숙제

나를 드러내는 돌파구

by 나린


숙제는 여전히 나를 자라게 한다


내겐 숙제에 대한 두 가지 추억이 있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탐구생활’, 또 하나는 중학교 시절의 ‘안중근 의사 조사 과제’다.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절의 기억이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배움의 기쁨과 책을 좋아하는 즐거움을 가르쳐준 시간이기도 했다.


국민학교 시절, 내가 가장 기다리던 방학 숙제는 탐구생활이었다.

책을 읽고 탐구한 뒤,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네모칸 문제를 푸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친구들과 동생들을 불러놓고 내가 선생님인 마냥 아이들을 가르치고 종이에 정답을 써서 오려 붙이고 서로의 답을 맞혀보며 깔깔거리던 시간들.

연필은 손에 쥐자마자 닳아버렸고, 노트에는 색연필 자국이 가득했다.

숙제라기보다 하나의 놀이였고, 작은 세상을 탐험하는 모험이었다.

그때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바꾸는 즐거움을 처음 배웠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숙제가 생겼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조사 과제’였다.

그 과제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엄마가 어디선가 얻어오셨던 13권의 백과사전을 뒤지며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고,

하얼빈에서의 의거와 법정 진술, 그리고 그가 순국한 뒤 방 안에서 피어났다는 꽃의 이야기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자료를 모으는 일은 힘들었지만, 그 과정은 오히려 내 안의 열정을 깨웠다.

숙제를 내주신 선생님이 내 숙제를 보며 “이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야”라고 칭찬하셨을 때,

나는 처음으로 공부가 점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존경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아이들의 숙제를 함께 도와주다 보면 그 시절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으로 손쉽게 정보를 얻지만,

그만큼 사유의 깊이는 짧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여전히 교과서와 백과사전의 냄새를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그것들이 세상의 모든 해답을 담고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안다. 세상의 답은 책 속이 아니라

그 답을 찾아가려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여전히 ‘숙제’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 속엔 노력의 기억이 있고, 발견의 기쁨이 있으며,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던 따뜻한 순간이 숨어 있다.

어린 시절의 숙제가 내게 탐구의 기쁨을 가르쳐주었다면,

어른이 된 지금의 숙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삶의 숙제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단지 이제는 연필 대신 마음으로 답을 써 내려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