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기억 하나..
<편지>
작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에 정리를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스몰 라이프의 삶을 시작했다.
살아온 나의 삶의 흔적이 담긴 추억이 담긴 그것들을
버리는 일은 왜 그리도 쉽지 않은지..
비우면 잊힐 텐데.. 있었는지 조차 잊고 살아질 텐데..
잊히고 싶지 않은 기억 탓인지, 아니면 또다시 소환해 내고픈 욕심 탓인지.. 들고도 한참을 망설인다.
그러다 작은 상자 속 발견된 빛바랜 일기장 속 편지한 장.
쓰고도 차마 부치지 못했던 편지 한 장이 오랜 세월 기다린 티를 낸다. 영 잊지는 않았구나..
그랬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차마 전달이 되지도 않은 그때의 내 나이에 대한 기억.
이거 때문이구나. 이런 빛바랜 기억이 좋아 비워 내는 일이 쉽지 않음을 또다시 실감하는 시간이다.
모자원...
어린 시절 나의 유년을 보내었던 곳. 아빠가 없는 가정들을 나라에서 지원해 도와주던 시설이었다.
대구에서 하시던 섬유 공장 부도로 세상과 등진 아버지의 빈자리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너무나 잔혹한 현실이었다.
나보다 엄마에게는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
난전에서 장사를 하던 엄마의 모습을 가엽게 여긴 누군가의 도움으로 우리는 엄마를 따라 낯선 환경의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
모자원엔 글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모자원이란 기관을 후원해 주는 이들에게 매번 보내어지는 편지의 몫이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매번 똑같은 사연에 이름만을 달리해 쓰던 편지는 나의 글쓰기 실력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시간이었지만, 글 쓰는 연습과 동시에 감사의 마음을 배운 듯하다.
글 쓰는 연습이 지겨워질 때쯤 몰래 찢어둔 편지 한 장에 내가 정말 보내고픈 사연 하나를 적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하늘나라 어디쯤엔가 있을 아빠에게
오늘은 후원자님 말고 아빠에게 쓰려고 편지지 한 장 가지고 왔어. 편지 쓰는 첫날부터 아빠에게 쓰고 싶었는데 써야 할 편지도 많고 편지지가 남질 않아 오늘에서야 쓰는 거야. 아빠 나 친구들 동생들 대신해서 편지 잘 써서 이쁜 옷도 받아 입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지? 다 알고 잘 지켜보고 있을 거야 아빠는.
교회 목사님 댁에서 사모님이 가르쳐 주시는 피아노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 피아노 연습하기가 쉽지가 않아.
후원자님한테 피아노 필요하다고 편지 써볼까?
근데 후원자님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힘들 수도 있어. 사진 오는 거 보니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고 외국 사람들이야. 그래서 내 글이 전달이 잘 안 될지도 몰라.
아빠는 이제 아프지 않지? 세 밤만 자고 나서 일어나기로 약속했는데 세 밤 자고 나서 아빠는 하늘나라 가버렸네.
아빠가 먹고 싶다고 했던 바나나 우유 사다 주길 참 잘했지? 나는 또 사다 줄 수 있는데 아빠가 없네.
내가 아빠 만나러 갈 때 바나나 우유 많이 챙겨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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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 싶으니 꿈에 한 번만 찾아와 달라는 내용과 순수했던 나의 마음을 고스란히 도 담아내어 있었다.
슬픔이 밀려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흔히 있는 그런 슬픈 감정과는 다른 미소가 나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순수했던 나의 유년 시절의 감정은 여전히 나의 어디 한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시절 그 나이던 나를 만나는 시간이 설레고 좋고,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 있다.
그때의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좋다.
<꽃밭에서>에서 노래를 같이 불러주던, 아카시아 꽃을 유난히도 좋아하던, 둘째 딸을 유난히 이뻐하던 그런 아빠의 기억이 좋다. 술을 한잔 걸치시고 누런 종이봉투에 담아 사 오셨던 튀김 닭이 그리움의 맛으로 남은 시간조차도 내겐 아쉬운 기억의 한 조각이다.
그런 아빠가 계셨다는 기억이 좋다.
그리고
언젠가 목을 놓아 운 기억이 있다.
난 눈물이 없진 않지만 목을 놓아 펑펑 울어 본 기억도 많진 않다. 유난히 아빠가 그리운 날 역시 드물다. 그날은 무슨 이유였는지 그저 아빠란 단어 하나에 묻어 둔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는 듯 눈물샘을 놓아버렸다.
울어도 울어도 후련함조차 없는 그런 감정.
두 번 다시는 가지고 싶지 않은 최악의 슬픔 감정.
한 번만 하자. 제발...
난 아빠의 기억 속에선 열 살 모습의 어린 딸이다.
지금 나의 모습이 아닌 그저 천진난만한 둘째 딸의 모습이다. 나 역시 아빠를 생각하면 그때의 모습, 그때의 감정,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이다.
여전히 생생한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시간들.
가끔은 그때의 어린 딸의 모습이고 싶은 날 글을 쓰는 이런 시간이 나쁘진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