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여러분의 ‘아저씨’는 어디에 있나요? (2)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

by 백상민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

소외를 통해 단단하게 얼어버린 지안의 마음도 점차 녹기 시작한다. 바로 ‘아저씨’ 동훈에 의해서다. 지안은 동훈의 휴대전화에 도청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후, 동훈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었다. 사실 동훈의 회사 대표이자, 동훈의 아내와 불륜 관계인 준영은 지안을 이용해서 동훈을 회사에서 나가게 하려고 계획했다. 준영은 지안에게 계획이 성공하면 큰 사례를 하겠다고 했고, 2천만 원의 사채가 있는 지안이 돈을 갚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훈에게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동훈과 24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한 지안은,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동훈에게서 동질감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과 정반대의 삶을 산다고 생각했던 동훈에게도 그만의 슬픔이 있었고, 그 안에서 지안은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지안은 동훈의 일상을 엿들으며 점점 그와 감정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지안은 동훈을 ‘도청’하면서 감정이 변화했다. 여기서 도청은 연출자의 드라마적인 장치로, 지안과 동훈의 감정 공유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도청으로 인해 바뀌는 지안의 모습은 6화의 에피소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6화에서는 삶의 무게에 지친 동훈이 바람을 쐬러 한강대교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동훈은 다리 위에서 한숨을 쉬며 강을 멍하니 쳐다본다. 그때, 동훈을 도청하고 있던 지안은 동훈의 큰 한숨 소리에 놀라 도청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한다. 애플리케이션에서 동훈의 위치가 한강대교 위로 표시되자, 혹여나 동훈이 나쁜 생각을 할까 걱정이 된 지안은 동훈이 있는 위치까지 정신없이 달려간다. 다행히도 이는 지안이 오해한 것이었고, 지안은 안도했다. 그리고 지안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동훈을 향한 감정이 점점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6화의 또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지안의 감정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때는 삼안E&C의 전체회식자리였다. 술에 취한 안전관리 3팀의 김 대리는 동훈이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에, 동훈이 회사 대표인 준영의 대학 선배지만 지금은 준영의 밑에서 무시 받고 있다며, 그 이유가 동훈의 무능함이라고 말했다. 그때, “남자는 잘나고 봐야 해”라며 동훈을 험담하던 김 대리의 뺨을 지안이 때렸다. 다음 날, 이 사실을 안전관리 3팀 직원에게서 들은 동훈은 지안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김 대리 왜 때렸어? 왜 때렸냐고.”

“아저씨 욕해서요.”


6화에서 지안이 직장 동료 뺨을 때린 에피소드는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은 지안이 누군가를 위해 행동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동훈에 의해 지안의 얼어있던 감정이 녹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즉, 돈이 필요해서 그에게 접근했던 지안이 이제는 점점 동훈의 ‘편’이 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점점 동훈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지안의 모습은 12화의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훈은 상무 후보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상무가 되기 위해서는 상무 진급 심사가 필수적인데, 심사에는 동훈의 인터뷰뿐만 아니라 안전관리 3팀 동료 직원의 인터뷰도 포함되어있었다. 동료 직원 인터뷰는 평소 동훈이 직장 상사로서 어땠는지에 대한 내용을 물으며 동훈의 평소 행실을 평가하는 데 목적이 있다. 회사 대표 준영 측은 어떻게든 동훈의 약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료 직원 인터뷰 대상자로 지안을 지목했다. 동훈과 지안을 부적절한 관계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다. 인터뷰 당일, “박동훈 부장과 어디까지 갔느냐”는 식의, 동훈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잠시 망설이던 지안은 이내 입을 뗀다.


“배경으로 사람 파악하고, 별 볼 일 없다 싶으면 빠르게 왕따 시키는 직장 문화에서 스스로 알아서 투명 인간으로 살아왔습니다. 회식자리에 같이 가자는 그 단순한 호의의 말을 박동훈 부장님께 처음 들었습니다. 박동훈 부장님은 파견직이라고, 부하 직원이라고 저한테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일했던 3개월이 21년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습니다. 지나가다 이 회사 건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평생 삼안E&C가 잘되길 바랄 겁니다.”

“무시, 천대에 익숙해져서, 사람들한테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고, 인정받으려고, 좋은 소리 들으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잘하고 싶어졌습니다.”


“전 오늘 잘린다고 해도,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아 봤고, 어쩌면 내가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준 이 회사에, 박동훈 부장님께 감사할 겁니다.”


지안의 인터뷰 속에는 지안이 그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소외가 그대로 묻어난다. 그녀는 자신에게 선을 긋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았고, 그 상처는 어느새 지안의 감정을 뭉개버렸다. 그러나 그런 지안을 동훈이 변화시켰다. 동훈이 지안에게 한 행동들은 선한 영향력이 되어 지안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지안은 이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크기가 넓어졌다. 결국, 지안의 인터뷰는 삼안E&C 회장에게까지 이르렀고, 덕분에 동훈의 상무 진급에는 파란불이 켜진다.

이처럼 6화에서 시작된 지안의 감정 변화는 12화가 되었을 때 정점을 찍는다. 지안은 자신과 나이도, 상황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동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이는 그녀가 닫혀있던 마음을 열게 된 가장 큰 계기이다.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던 지안이 동훈의 힘듦을 공감하고 그를 위로하고자 하는 모습을 통해서, 드라마를 보는 우리의 감정도 변화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고, 그 삶 속에는 저마다의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 자신의 아픔을 감추고 살아간다. 우리가 감춘 아픔은 아주 작은 관심으로도 곧바로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계기로 생긴 벽으로 인해 서로에게 무심하다. 우리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드라마 속 지안이 변화하는 모습은 이러한 우리도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해주면서 누군가에 의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를 전해준다.


인간(人間)다움, 우리의 관계

지안의 동료 직원 인터뷰 후, 지안이 과거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사실이 회사 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지안은 동훈을 도청하는 등 자신이 과거 동훈에게 저지른 일들이 수면 위로 드러날까 걱정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동훈의 앞날을 막을까 두려워 갑작스레 사라져버린다. 동훈은 연락 두절인 지안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해보지만, 지안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안의 목격담을 듣게 되었고, 그 순간 동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이었는데, 네 번 이상 잘해준 사람, 나 같은 사람, 내가 좋아한 사람.”“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건가.”

동훈의 휴대전화에서는 지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안은 동훈에게 자신이 살인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 후, 또다시 반복될 사람들의 반응에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동훈은 그런 지안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러나 지안은 도리어 동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14화에서 지안이 동훈과 통화를 마치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지안이 완벽하게 ‘인간다워졌다’는 점을 가장 표면적이고 강하게 드러냈다. ‘네 번 이상 잘해줬다’는 표현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지안은 자신을 한두 번 도와줬던 행동들은 그저 자신을 향한 호기심, 혹은 동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을 네 번 이상 도와줬던 동훈의 모습을 보며, 그가 진정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줬다고 여긴 것이다. 연출자가 지안의 대사를 통해 지안과 동훈이 유대감을 형성했음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으로부터 소외되고 상처받아 단절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던 주인공이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금 유대감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나이와 성별, 성장 배경 등을 뛰어넘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더불어 드라마에는 사람 간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가 숨어있다. 바로 ‘밥’이다. 드라마에는 거의 매회 밥을 먹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특정한 등장인물에 국한하지 않고 “밥을 같이 먹자”는 대사를 빈번하게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말 중 하나가 “밥 먹었어?”라는 인사였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한 끼 식사를 때우는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드라마 내에서 등장인물들이 밥을 같이 먹는 것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밥을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고 칭한다. 식구는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가족’의 개념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15화의 에피소드 역시 관계라는 키워드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훈은 마침내 지안을 찾게 된다. 동훈은 울고 있는 지안에게 “다 괜찮다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지안은 동훈이 내민 손을 잡고 그들의 동네, ‘후계동’으로 돌아온다. 동네 주민들은 지안이 다시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기뻐했다. 그리고 지안은 처음으로 이들과 함께 어울린다. 지안에게는 동네 가게에 모여 왁자지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게 느껴졌다. 후계동 사람들은 함께할 때 행복해 보이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이처럼 그들에게 후계동이라는 공간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만들어가는 장소이다. 장소가 주는 유대감은 드라마를 보는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우리는 약속을 잡을 때도 ‘어디’서 만날지를 정하고, 안부를 물을 때도 ‘어디’냐고 묻는다. 이처럼 장소가 우리에게 주는 유대감은 대단히 크다. 우리의 일상에 ‘장소’라는 개념은 매우 밀접하게 붙어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 후계동 사람들처럼, 우리는 함께 공유하는 장소 안에서 서로 유대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면,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동훈과 지안이 유대감을 형성한 장소이자 드라마 전체의 공간적 배경을 차지하는 ‘후계동’은 가상의 공간이다. 드라마에서 광화문, 한강대교, 시청 등 실제 지명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후계동은 서울에 위치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연출자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후계동’이라는 공간만을 가상으로 설정했다. 이는 드라마 속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가상의 공간을 부여함으로써 ‘후계동’이 우리가 각자 살고 있는 동네에 자연스럽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14화와 15화에서는 사람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유대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안은 동훈을 통해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었고,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을 배워갔으며, 동훈, 그리고 후계동 사람들과 유대감을 만들어갔다. 드라마 초반에 지안이 보여주었던 쓸쓸함과 우울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생겼다. 지안(至安)의 의미는 ‘편안함에 이르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부터 치유 받으며 이내 편안함에 이르게 된다. 연출자는 지안의 이름과 드라마의 이야기를 통해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편안함을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단절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지안을 통해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통해서 유대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고, 우리의 관계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단절된 시대 속 해결책은 ‘우리’

70년대 도시의 개발, 90년대 인터넷의 발전, 그리고 21세기 스마트폰의 등장 등은 우리를 단절의 시대로 이끌었다. 그리고 2020년, 갑작스럽게 나타난 코로나 19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해 우리는 또 다른 단절의 시대를 직면하게 되었다. 코로나 19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물리적인 거리를 둘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는 우리의 관계를 위협했다.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마저 멀어지게 됨으로써, 서로를 향해 더욱 무심해질 우려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내가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은 사회화의 동물로, 태어날 때부터 주변의 도움과 보호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인간다운 삶’이란 상호작용을 하며 유대감 속에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유대감은 친밀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혼자 사는 것은 ‘삶’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껏 함께 살펴본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우리에게 ‘인간다운 삶’에 대해 보여주었다. 드라마는 우리의 현실과 같은 차가움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유대감이 그 차가움을 녹여버렸다. 이는 연출자가 단절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힘든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이다. 지안의 ‘아저씨’ 동훈은 지안이 잊고 있던 감정을 되찾아주었다. 그리고 지안 역시 동훈 자신이 스스로 괜찮은 사람임을 깨닫는 데 일조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편이 되어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냉혹한 사회 속에서 따뜻함을 만들어갔다. 우리도 누군가의 ‘지안’이 될 수 있고, 누군가의 아저씨, ‘동훈’이 될 수 있다.


“영웅은 누구나 될 수 있지. 소년의 어깨에 코트를 여며주면서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단순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코로나 19로 우리는 마스크를 쓰는 삶이 익숙해졌다. 마스크를 씀으로써 서로의 얼굴, 표정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마치 선글라스를 낀 지안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안의 직장 동료들이 그러했듯 마스크 밖에 있는 모습만을 통해 서로를 판단하게 된다면, 우리 사이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고 단절은 심화될 것이다. 마스크 안쪽의 모습, 즉 서로의 내면과 감정을 중요시하면서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서로에게 따뜻함을 전한다면, 우리도 드라마 속 후계동 사람들처럼, 그리고 동훈과 지안처럼 편안함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되찾아준 따뜻한 유대감을 잊지 말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나누려는 노력을 통해 단절된 사회 속에서 따뜻함을 찾아가길 희망한다.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그리고 내가 이제 널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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