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1)

-미스터리 어드벤처 예능 프로그램 「여고추리반」시즌1, 2021.

by 백상민

글을 시작하며

대학 신입생 시절 방탈출 카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집 주변과 학교 주변 곳곳에 입점했다. 나는 활동적인 경험을 좋아했던 터라 망설임 없이 방탈출 카페에 방문했고, 방탈출 카페가 주는 새로운 경험과 탈출에 성공했을 때 오는 희열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탈출 카페 속에서는 여러 단서를 갈무리하며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었고, 마음을 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틀이나 규격에 해당하는 ‘방’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은 그 틀과 규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나 욕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방탈출 카페는 스스로 방에 갇혀있기보다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틀에 박힌 사람이 되지 않고자 했던 나의 의지와 잘 맞물렸고, 이내 방탈출 카페에 가는 것은 나의 오랜 취미가 되었다.

방탈출 카페를 즐겨 가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나는 능동적인 삶을 추구해왔다. 능동적인 삶이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반면에 수동적인 사람은 그저 타인이 제시한 틀 안에서 시키는 것만 한다. 수동적인 사람은 그저 세상의 부속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매슬로가 말한 인간의 욕구 5단계 중 가장 상위의 것은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자아실현은 자신의 의지로 발현되며 이를 위해서는 능동적 삶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능동적인 사람이 되기를 추구해왔던 나에게도, 알게 모르게 이를 제재하고 억압하는 수단들이 존재했다. “사내자식은 아무리 슬퍼도 울면 안 돼.” “학생이면 공부만 해, 공부 잘하는 게 효도야.” 이는 내게 하나의 틀로 작용했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했다가 자칫 ‘튀지는 않을까’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 인생은 내 것이기에’ 누군가의 조언을 가장한 간섭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스스로 품어왔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방탈출 카페에도 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코로나 19로 방탈출 카페에 가는 것에 제약이 생긴 후로는 이곳에 갔던 것과 같은 이유로 추리 콘텐츠를 즐겨보게 되었다. 그렇게 TIVING에서 방영한 추리 예능 「여고추리반」 텍스트를 접하게 되었다.


「여고추리반」은 2021년 3월 29일부터 같은 해 3월 19일까지 방영한 16부작 TIVING 미스터리 어드벤처 장르의 프로그램이다. 박지윤, 장도연, 재재, 비비, 최예나가 출연했으며 「더 지니어스」, 「대탈출」 등의 장르 예능을 통해 젊은 팬덤을 구축한 정종연 PD가 제작했다. 종영 후인 2021년 4월 27일, 재재를 제외한 전 출연진이 브랜드 고객충성도 대상을 받았으며 출연진 중 장도연과 재재는 2021년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예능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이를 장도연이 수상하는 등 텍스트의 파급 효과가 상당히 컸다. 「여고추리반」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여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이야기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마치 학교를 테마로 한 방탈출 카페와 같은 느낌을 부여한다. 그래서 텍스트가 나를, 혹은 우리를 매료시킨 이유가 바로 우리의 현실에 많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회적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할 시기부터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는다. 따라서 학교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으며, 학교와 관련된 텍스트를 마주할 때면 과거 우리의 추억 내지는 경험이 떠오르곤 한다. 이처럼 학교라는 공간은 한 사회 내의 구성원 대부분과 결부되었기 때문에, 학교라는 곳과 연결된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한 사회에 부조리가 있다면 그 부조리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가장 큰 집단 중 하나가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텍스트에서는 범사회적인 문제를 보여 주기 위해서 학교라는 공간을 활용하고, 「여고추리반」도 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여고추리반」은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우리의 삶, 즉, MZ 세대들의 삶을 보여 주었다. MZ 세대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 세대’를 아우르는 말이다. 「여고추리반」은 기성세대가 만든 틀 안에 있던 MZ 세대가, 이제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 그들이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대게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든 상황을 전제하고 추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재밌어서 방탈출 카페를 즐기곤 한다. 그리고 방탈출 카페 테마 속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면, 그들은 더 완벽하게 빠져들 것이다. 지금부터 방탈출 카페처럼 우리가 경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여고추리반」 텍스트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직면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파헤쳐보려 한다.


우수한 학생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새라 여자고등학교(이하 새라 여고)에 박지윤, 장도연, 재재, 비비, 최예나 이 5명이 입학을 하며 텍스트는 문을 연다. 이들은 입학하자마자 방과 후 동아리로 추리반에 들어가게 되고, 하교 도중 화장실에서 학교폭력을 연상케 하는 동급생 나애리(이가영 분)와 고인혜(이승연 분)의 갈등을 목격한다. 그리고 2주 뒤 S반 선발시험에서 부정행위 사건이 일어나고, 추리반은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 또한, 부정행위 사건을 뒤이은 전교 1등 고인혜(이승연 분)의 자살 사건을 파헤치던 추리반은 S반 학생들이 먹는 초록색 알약과 수상한 교사들, 그리고 과거 학교 폭발 사건이 모두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이 모든 비밀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추리반 5인방은 사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우리의 삶이 스며들어있는 「여고추리반」의 세계관

「여고추리반」 텍스트는 학교를 배경으로 우리 사회를 비추고 있다. 이러한 포맷은 텍스트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연출자는 지난 3월 클럽하우스를 통해서 「여고추리반」만의 세계관을 디테일하게 형성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여고추리반」은 텍스트만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축해서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텍스트의 배경이 되는 학교 건물은 실제 충청남도 홍성에 있는 폐교를 개조한 것이었다.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휴대폰을 걷는 장면이나 학교 종이 울리는 것, 매점과 구령대 등의 학교 구조를 이용한 추리 장면을 활용해서 우리가 텍스트를 통해 학교와의 기억을 환기하는데 장애물을 없앴다. 또한, 촬영 시 현장에 카메라 감독이나 PD 등 스태프가 단 한 명도 들어가지 않았으며 그 대신 200대가 넘는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를 위해 거치된 것이 전부였다. 이에 더해 출연진들을 위한 대본도 존재하지 않았고 이는 텍스트가 더 생생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대본이라는 거시적인 틀이 존재했다면 텍스트가 이처럼 유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텍스트 속에 스태프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나타났다면 이는 우리의 몰입도를 깼을 것이다.

“야 얘들아 이거 봐봐!”

텍스트에는 다양한 SNS 플랫폼을 활용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새라 여고 전교 1등 고인혜(이승연 분)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2학년 2반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추리반 5인방은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는데, 그때 같은 반 친구들이 고인혜(이승연 분)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인스타그램은 향후 진실을 알아내는 것에 막중한 역할을 한다. 또한, ‘닭새라 TV’라는 유튜브 채널도 텍스트 속에서 등장한다. 이는 새라 여고의 각종 소식을 전해주는 유튜브 채널이었고, 많은 새라 여고 학생이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추리반 5인방도 종종 이 채널을 통해 추리에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2개의 SNS 계정이 실존한다는 것이다. 텍스트 밖으로 나와서도 우리는 SNS를 통해 고인혜(이승연 분)의 인스타그램 계정과 ‘닭새라 TV’ 유튜브 채널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해당 게시물이 작성된 날짜도 텍스트 내에서 나온 날짜와 모두 일치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몰입도를 더욱 가중했다.

「여고추리반」은 추리 예능이고 방탈출 카페의 형식을 빌려왔다. 따라서 기호로 암호화된 글자를 해석하는 것부터 애너그램이나 W3W, 네모 로직까지 다양한 퀴즈들과 힌트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아이템들은 우리의 흥미를 높이지만 우리가 텍스트의 내용이 자칫 ‘가상의 공간’이라고 판단하고 한 발짝 멀리서 텍스트를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연출자는 텍스트 안과 밖을 연결하는 SNS라는 특별한 장치를 통해 이 텍스트가 허구의 것이 아닌 실제의 사건처럼 보이게 했고, 우리와 텍스트 사이를 더욱 견고히 이어주었다.

텍스트는 학교 내 괴롭힘, 소수만이 누리는 혜택, 시험 내 부정행위, 자살 등 실제 학교 내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는 여러 문제를 보여 주고 있다. 이렇게 실존하는 이야기들을 텍스트 속에 담은 것도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텍스트의 주 배경인 새라 여고의 학교 마크에는 특별한 무늬 없이 고등학교를 뜻하는 한자 ‘高’만 적혀있다. 이는 새라 여고가 특정한 학교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다녔던 학교 혹은 우리가 있는 사회를 비추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여고추리반」이 구축한 세계관은 다양한 장치들로 우리의 삶에 스며들었고, 텍스트를 더욱더 핍진하게 만들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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