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어드벤처 예능 프로그램 「여고추리반」시즌1, 2021.
작은 사회, 학교를 배경으로 보여 주는 커다란 이데올로기의 늪
새라 여고는 매넌 전국 여중생 중 상위 0.1% 40명이 입학하는 명문 고등학교이다. 그리고 입학생 중 학습 능력이 우수한 극소수의 학생들을 S반으로 분류한다. S반은 매년 1월 치러지는 선발시험을 통해 선발된다. 그동안 S반에 입학한 학생들은 매년 수능에서 만점을 받았고 모든 새라 여고 학생들은 S반에 선발되기 위해서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며 공부한다. S반 선발시험을 2주 앞두고 전학을 온 추리반 5인방은 전학 첫날부터 새라 여고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다. 2학년 2반으로 전학을 와 교탁 앞에서 인사를 건네는 그들에게 반 친구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 학생들은 전학생이 온 순간에도 고개를 숙인 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재재는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 입시 제도의 폐해라고 언급한다. 어쩌면 텍스트 속 S반은 ‘공부 잘하는 아이’를 상징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그들의 여러 다양한 능력을 헤아려보기 전에 공부부터 잘하기를 강요하곤 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아이들은 마치 부속품같이 공부하게 되었고, 서로를 보살피기보다는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새라 여고 S반에 선발되면 특별한 관리와 특별 혜택으로 무조건 수능은 만점을 받으며 반드시 일류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이는 결국, 6화에 등장하는 ‘커닝 사건’으로 이어진다. 텍스트 속 나애리(이가영 분)는 S반에 입학하기 위해서 전교 1등 고인혜(이승연 분)를 협박해 부정행위를 강요한다. 이 사실은 추리반 5인방에 의해 밝혀지고 나애리(이가영 분)는 무기정학을 받게 된다. 그리고 부정행위에 대해 영어 담당 교사인 조지 부시맨(제이슨 넬슨 분)은 “요즘 애들 진짜 무섭다. 말세야 말세”라고 말한다.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반드시 들어갔어야 하는 S반, 어쩌면 ‘무서운 애들’은 그들이 만든 이데올로기로 인해 일어난 결과물이지 않을까.
사실 S반에 선발된 학생들이 엄청난 학습 능력을 보여 주는 비밀은 바로 ‘초록 알약’에 있다. 교사들은 S반 아이들에게 매일 초록 알약을 주었다. 그리고 이 초록 알약은 다름 아닌 각성제로, 뇌 기능을 극대화하는 마약 성분의 약이었고, 알약을 먹으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성적이 향상되지만,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까지 이어지기도 하는 극심한 부작용도 존재했다. 그리고 추후 새라 여고 교사들은 사실 ‘초인간연구회’ 연구원들이었고, 공부를 잘하는 S반 학생들에게 초록 알약을 먹여서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예언이 가능한 ‘초인간’을 만들도록 임상시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 밝혀진다.
학생들은 초록 알약을 먹으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를 먹는다. 그리고 이 초록 알약은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을 의미한다. 즉, 초록 알약은 S반과 동일시되는 욕망의 개념이고 이는 실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이다. 초록색이 주는 상징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생명과 평화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초록색은 미성숙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학생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시선을 의미하기도 하고, 미성숙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학생들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텍스트 속에는 공부와 관련된 이데올로기들이 등장한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배우는 곳이다. 단순히 교과목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을 통해 성숙해지고 사회화가 이루어지며 자아를 형성하고 실현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에서 보여 주는 학교의 공간은 학생들이 자아를 형성하기 전에 공부를 강요받고 공부를 어떤 목적에서 해야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부속품처럼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텍스트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확장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도 비추고 있다. 5화 에피소드에서 추리반 5인방은 학교와 얽힌 비밀을 찾기 위해 과거 추리반 선배들이 아카이빙한 자료를 살펴보았고, 그 안에서 스크랩된 신문기사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30년 전 새라 여고 가스폭발 사고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해당 사고로 인해 전교생이 사망했고, 교사들은 사고 당시에 연수를 가 있던 상황이라 대부분 목숨을 건졌다. 이는 무고한 피해자들은 사망하고, 사고를 일으킨 자들은 목숨을 건졌던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추리반 5인방은 15화 에피소드에서 30년 전 초록 알약을 먹고 각성한 실험체가 예언하는 영상을 발견한다. 해당 영상에서 실험체는 ‘곧 백화점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을 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새라 여고 가스폭발 사고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 장치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5화에 나오는 신문 스크랩 중에는 학업과 무관한 동아리 활동을 모두 없애라는 학교 지침에 의해 추리반도 폐지된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이는 과거 우리나라의 군사정권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같은 맥락에서 새라 여고 수업 시간표를 보면 음악, 미술, 체육 교과목이 없다. 그래서 추리반 5인방에 체육복을 입고 기합받을 때 체육 교사가 아닌 영어 교사가 그들을 관리한다. 새라 여고에서는 공부와 상관없는 것들은 배척하고 제거했고, 이는 군사정권 시대에 그들의 실리와는 상관없는 모든 것을 제거했던 판자촌 강제철거 사건을 연상케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군사정권 등이 일으킨 사회적 분위기는 내면화된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갈무리할 수 있다. 이는 극대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등한시되는 풍경의 연장선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마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라”하는 광범위한 이데올로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60년대 이후 군사정권, 그리고 오늘날까지 한국 사회는 고질적으로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수직적인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텍스트 중 지하 벙커 속에 사람을 가둬두고 사건을 조작하는 장면이나 경찰의 부정부패로 추리반 5인방에 경찰에 손을 뻗지 못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로 같은 이야기를 보여 준다.
추리반 5인방이 초인간연구회의 비밀을 알아내는 에피소드가 담긴 14화에서는 한 책 구절이 소개된다. 형광펜으로 표시되어있던 구절은 ‘자유의지는 앞으로 우리 인간이 지어낸 상상의 이야기 속에만 존재할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즉, 인간의 자유는 경시되고 그저 그들이 원하는 초인간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고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는 지금껏 언급했던 텍스트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명시해주는 장면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여고추리반」은 텍스트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