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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Sep 16. 2021

'봉오동 전투' 방문기

스코틀랜드 독립운동가 윌리엄 월레스

우리 집에서 20분 차로 가면 '스털링'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스털링 하면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가 '윌리엄 월레스'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월레스가 자랄 때, 평화로웠던 스코틀랜드는 알렉산더 3세가 통치했었다. 그러다 1286년 알렉산더는 말에서 떨어진 후 사망하고 스코틀랜드의 영주들은 알렉산더의 4살 난 손녀 마가렛(Margaret)을 여왕으로 선포한다.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King Edward I)는  그의 아들 에드워드 2세와 마가렛을 약혼시켰지만 1290년 마가렛은 병에 걸려 8살의 나이로 죽게 된다. 이를 계기로 1296년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강제로 통치, 점령하게 된다. 그렇게 잔인한 정치는 시작된다. 


[스털링 다리 전투 Battle of Stirling Bridge, 1297년 9월 11일]

잉글랜드의 만행에 분노한 월레스는 동료들을 모으고 스털링에서 앤드루 모레이(Andrew Moray)와 연합해 숫적으로 무기와 기술적인 면에서도 우세했던 잉글랜드 정규군을 대패시킨다. 그 당시  기록에 의하면 잉글랜드는 3천 명의 기병대와 일만 명의 보병대를 동원했다고 한다. 이 전투를 이끌었던 장군이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이 맡았던 배역, 윌리암 월레스다. 

최대의 전과를 올린 이 승리는 잉글랜드 북부 요크 성의 점령으로 이어진다.



좌) 스털링 카슬에서 보이는 스털링 다리        우) 스털링다리 by 픽사베이


윌리엄 월레스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번 8.15 광복절 때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이 겹쳐 떠오른다.


[봉오동 전투 1920년 6월 6-7일]

1907년 일본은 민간 총기 강제 회수와 대한제국 군대까지 강제 해산시켰다. '총알로 바늘귀도 뚫는 사람'이라고 불렸던 전설의 포수 홍범도는 사냥을 해서 가족을 먹고 살려야 했기에 총을 강제로 회수한다는 일본의 만행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장군은 만주 간도에서 의병활동을 한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과 만주 북간도 지역의 독립군과 연합해서 일본의 정규군 월강 추격대를 봉오동으로 유인해 대패시킨다. 최대의 전과를 올린 이 승리는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진다. 




최근에 [기억하여 기록하다] 홍범도 편을 보면 이 봉오동 전투 지역이 삿갓을 뒤집어쓴 지형이라고 배우 유해진이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옴폭 들어간 골짜기가 저수지로 변하여 물로 덮여있다.  

2019년 9월 봉오동 전투의 유적지를 찾아가 보고자 무작정 떠났다.

중국인 지인과 함께 중국 길림성 도문까지 GPS 지도를 보면서 봉오동 저수지로 달렸다. '봉오 저수지'라는 정겨운 푯말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두근거리는 내 심장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수지로부터 길을 따라 산으로 쭉 올라가다 길을 잃었다. 다시 저수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가 다른 길을 따라 올라갔다. 한참을 헤매고 있을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나오는 한 집이 보였다. 한족 할아버지께서 마당을 쓸다 말고  우리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셨다. 혹여나 봉오동 전투의 절설을 아시려나 조심히 여쭈었다.

"우리 마을에 전투가 있었다고?"

"봉오동 전투(...)?"

할아버지 얼굴이 가을 하늘처럼 붉게 물들었다. 

봉오동 전투는 그 이름으로 상영된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처럼 많은 이들에게 잊혔던 역사였다. 

할아버지는 봉오동 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며 떨리는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올리셨다. 정처 없이 주저 없이 계속 달렸다. 할아버지 손가락만큼 우리 차도 흔들려서 한참을 울렁거렸다. 숲 속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없는 길을 만들고 있는 우리가 답답하고 한심해졌다. 1920년 두만강을 건너 처음으로 이곳에 발을 들인 일본군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잔잔한 시냇물이 흐른다. 잠시 멈추고 싶었다. 

어디인지 모를 이곳에 두발을 디디고 섰다. 

이곳은 독립운동가들이 가쁜 숨을  죽여가며 매복했던 곳일 테다. 총구를 들이대고 흐르는 땀이 피가 되도록 치열하게 싸웠던 곳일 테다. 조국에 남겨둔 아내나 엄마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썼던 곳일 테다. 수백 번 수천번 숨가프게 걷고 뛰고 웃고 울었던 1920년 과거가 고스란히 담긴 곳일 테다. 봉오동!

우) '봉오동 전적지 기념비'라는 표시는 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흐릿한 사진이라 죄송합니다)


2021년 8월 15일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들어왔을 때 군악대 성악병이 독립운동가들의 애창곡인 '올드 랭 사인'을 불렀다. 

그제야 나도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검색해 보니 놀랍게도 스코틀랜드 민요였다.

고대 영어의 변형인 '스코트어'라고 불리는 언어로 쓰인 이 문구는 "오래전" 또는 더 구어적 표현으로 "좋은 옛날"로 번역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친구와 옛 시절을 회상하고 다시 되살리려고 하는 이야기이다. (By BBC news) 전 세계적으로 이별할 때 주로 불리고 있으나 좋은 옛날을 기억하며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하거나 새해를 맞으며 부르는 축가이기도 하다.


월리엄 월레스나 홍범도 장군의 마지막은 바람에 지는 낙엽처럼 형편없었다. 

그렇게 보잘것없던 나뭇잎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주었다. 

올드 랭 사인의 노래처럼 오래전 두 장군님을 만났고 좋은 옛날 그들만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노래했다.


 



봉오동 전투의 현장이 현재는 중국에 있고 중국의 입장에서는 중요하지 않는 유적지라 일반인이 찾아가기에는 표지판이 있어도 찾지 못할 정도로 난해한 미로였습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나 표지판으로 모든 이들이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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