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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Nov 05. 2021

999 응급 전화를 걸다

“저 외엔쪽 가….슴 …통   증   이    심……..해서 호    흡 하 기 가 어… 려 ….워요!”


영국에서 999에 전화 하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오래전 내가 첫째 딸을 임신하고 막달쯤 그때도 씨근씨근 가쁜 호흡이 문제였다. 병원에 며칠 입원하면서 처음으로 ‘천식’이라는 걸 알았다. 두 번째 999는 둘째를 임신하고.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격렬하고 짧은 진통에서 실신하듯 구급차 침대에서 쓰러졌다. 병원으로 출발 시동도 걸지 못한 채 둘째는 구급차에서 태어났다. 


왼쪽 가슴 통증은 어젯밤부터 시작됐다. ‘일찍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다른 날처럼 일찍 자고 일어나서 막내를 학교 보내고 집에 오면서 어제 느꼈던 가슴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  간신히 벽을 짚고 일어나 진통제를 먹었지만 진전은 없었다.

‘H E L P’

남편은 미팅 중이라 통화를 못 받을게 분명했다. 두 번째로 눈앞에 바로 떠올렸던  친구는 작년에 은퇴한 간호사였다.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몇 마디 대화하는 것조차 나에겐 무서운 고통이었다. 실 한 가닥처럼 가벼웠던 공기조차 입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튕겨나갔다. 

친구는 GP(지역 보건의사)한테 먼저 연락하라고 차분히 알려주었고

GP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999에 전화하라고 했다. 

999 통화음이 울린다. 심장이 출렁거린다. 

내 몸의 산소통에는 5%만 남아서 빨간 배터리가 충전하라고 깜박깜박 신호를 보낸다. 

“저 외엔쪽 가….슴 …통   증   이    심……..해서 호    흡 하 기 가 어… 려 ….워요!”

이 문장을 완성하는데 1분은 걸렸던가.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주소를 말하려니 들어오는 짧은 공기를 최대한 모았다가 주소 하나하나에 호흡을 내뱉으며 가슴을 쥐어짰다. 

“확인을 위해 주소 한 번만 더 말해 주세요”  

그나마 남아있던 바람 마자 빠져나간 풍선처럼 폐가 쭈글쭈글거렸다.  다시 공기를 모아야 된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런 눈물 조차 상처에 뿌려진 소금 같았다. 겁나게 따갑고 무섭게 무거워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급박한 내 전화를 받고 처음에 통화했던 친구는 걱정이 되어 나를 찾아왔고 구급차도 20분 만에 도착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멀쩡한 나였다. 마치 “우리 집에 불이 났어요. 빨리 오세요.”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처럼 그들이 왔을 때 나는 가슴통증도 호흡도 정상이었다. 뜨겁게 달궈진 볼만이 그전의 상황을 조금 알릴 뿐.

응급구조사 두 명이 서둘러 우리 집에 들어왔다. 한 명은 무거운 흰색 산소통을 매고 커다란 구급 의약품 상자를 들었고 다른 한 명은 응급 처치용 의료장비가 들어있는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들었다. 구구절절 이 상황을 애써 설명하려는 나를 차근차근 혈압부터 혈당, 산소 포화농도까지 다 측정하고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최근 한 달 정도 알레르기 때문에 재채기를 했었다. 콧물이 눈물처럼 뚝뚝 흘러서 휴지는 마스크 다음으로 옆에 달고 살았다. 혼자서 두툼한 휴지 두 박스를 후딱 해치웠으니. 재채기하면서 가슴의 근육을 당겨서 통증이 시작되었고 통증으로 호흡이 악화되면서 결국 공황상태로 넘어간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얼추 이해는 갔지만 999 남용을 반대하는 일인으로 그들의 금쪽같은 시간을 빼앗은지라 머리 숙여 죄송할 따름이었다. 

지금도 통증이 아예 사라진건 아니다. 가슴통증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면 가슴을 움켜잡고 괜찮아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던 응급구조사의 말의 힘을 빌려 들숨과 날숨이 꼬이지 않게 조절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거운 산소통을 들었나 놨다 환자분들을 들었다 옮겼다 그뿐인가 아이가 태어나고 기쁨 뒤에 있을 역겨운 피바다 청소와 소독도 응급 구조사의 몫 이리라.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불철주야 수고하시는 이분들의 에너지 통이 바닥나지 않기를 바란다. 환자를 태우지 않고 돌아가는 노란 구급차를 바라보며 이분들의 일상 또한 괜찮아서 다행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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