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스혜영 Nov 11. 2021

처음 가본 도시,
글래스고에서 시위를 하다.

스코틀랜드/COP26

리더: What do we want? /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

대중: Climate Justice! / 기후정의!

리더: When do we want it? 언제 원하는가?

대중: Now! / 지금!


거짓말을 보태서 한 100번쯤은 외쳤던가. 

스코틀랜드 시골로 이사온지 10개월 만에 어마어마하게 큰 도시 글래스고를 찾았다. 글래스고는 영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스코틀랜드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시골쥐가 도시 쥐를 만나는 느낌이랄까. 먼 역사를 재현하듯 색 바랜 성당이며 박물관, 대학교들이 오래된 도시의 웅장함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장엄한 건물들 사이를 걸어가며 멈추고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1.5 Saves Lives’(1.5도 지구 살리기)라고 적힌 노란색 종이 팻말만 만지작 거리며 높이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글래스고에서 유엔 기후변화 협약 26차(COP26) 모임이 열렸다. 

Enough of ‘treating nature like a toilet’

유엔 사무 총안 안토니오 구테흐스가 지난 1일 개막식에서 했던 말이다. 

자연을 변기처럼 취급하는 것은 이제 충분합니다.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영국에서는 개와 산책하는 일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산책 중에 개가 똥을 누게 되면 바로 비닐봉지에 넣어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 만약 치우지 않고 가는 주인을 신고하게 되면 8만 원-12만 원 정도의 벌금이 따른다. 안토니오의 말은 분명했다.

이전부터 똥 싸고 나 몰라라 했던 너네들(나라들) 벌금 내고 제발 똥 좀 치우라고. 

그리고 똥 좀 그만 싸라고. 


글래스고 도시를 나섰던 이유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추위에 덜덜 이빨이 부딪히면서도 “기후정의”를 소리쳤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자연이 내지 못할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대신하고 싶어서. 


1인당 국가별 탄소량을 보면 대부분 잘 사는 나라들이 탄소배출량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1.사우디 아라비아18.48T(T=톤,1,00kg)

2. 카자흐스탄 17.60T

3. 호주 16.92T

4. 미국 16.56T

5. 캐나다 15.32T

6. 한국 12.89T

......

14. 영국 5.62T

출처: 미국 참여 과학자 모임의 2018년도 1인당 탄소배출량 통계.


예를 들면 이렇다. 영국에서 집집마다 세워진 차들의 수가 1-3대나 된다. 거기다 겨울이 되면 집들을 데워야 할 난방 이나 요리할 때 필요할 가스. 식단에 놓여질 육고기나 쉽게 쓰고 버려질 일회용 플라스틱. (한국이 더 심하다ㅠㅠ)

여기까지만 봐도 가난한 나라보다 개인의 탄소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Bsv0QyscE

이번 유엔 COP26 회의에서 베스트 장면을 꼽으라면 투발루(Tuvalu)의 외무부 장관 사이먼 코페(Simon Kofe)의 연설이다. 그는 양복을 입고 무릎까지 차오른 바다에서 연설함으로써 해수면 상승에 맞서는 투쟁을 몸으로 보여줬다. 

투발루는 해발고도가 최대 4-5미터인 태평양 섬나라다.  환경 및 기후 전문가들은 해수면 상승 문제가 지속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2060년 이후에는 투발루라는 나라는 바다에 완전히 잠길 것이라고 한다. 

투발루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다. 

고작 0.302T. (출처: Indexmundi- 2014년 기준) 

투발루보다 50배나 많은 탄소를 뿡뿡 뿜어내는 스컹크들 뒤에서 힘없이 쓰러져 가는 나라들이 투발루뿐만은 아니리라. 


우비를 단단히 입고 시위를 나갔지만 구멍 난 하늘로 우두둑 쏟아지는 비 때문에 외투 안의 셔츠까지 녹녹해졌다.  그러다 햇빛이 구멍 사이로 인사를 하면 그새 말랐다. 그렇게  젖었다 말랐다가 반복되는 중에서도 우산을 쓰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걸어가는 엄마가 보이고 아빠 다리에 매달리던 아이를 번쩍 높이 들어 목마 태우는 아빠도 보이고 ‘B라는 지구는 없습니다’라는 푯말을 들고 가는 손녀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젖은 낙엽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도로를 벌써 5시간째 걷고 있다. 신발창 밑에서 느껴지는 중력이 무거워서 땅으로 빨려 들어갈 것 만 같았다. 내가 걷고 있는 건지 기고 있는 건지 분명 두 다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아 걷고 있구나 짐작만 할 뿐이었다. 5시간이라. 

5시간이라면 하늘이 막혀 비가 오지 않는 어떤 나라에서 한 아이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가족을 위해 물 한병을 목에 걸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 아이들의 종종 걸음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999 응급 전화를 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