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미운 오리
얼굴이 따끔 하리만큼 가족 채팅방에 말풍선이 오고 간 건 엄마 한 데서 한 장의 사진이 날라 온 후였다.
"금방 설치하고 가시네 좋구나. 조-타"
엄마 눈에 훅 꽂혔던 분홍색 김치 냉장고가 엄마 집에 도착했다. 새 노트와 학용품을 새로산 분홍색 가방에 넣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를 가고 있을 아이처럼 만면에 웃음이 번져 있을 엄마 얼굴이 떠오를 때쯤 '카톡' 소리가 울렸다.
"대박 완전 보기 싫어"
들썽들썽 했던 엄마의 웃음에 찬물을 부운건 같은 집에 살고 있는 큰 언니였다.
새 가방 밑으로 고여있던 찬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적응 안돼. 미운 오리 새끼 짱박아 놓은 거 같이 넘 안 어울려.
집을 나가야겠다."
언니의 말풍선이 거세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미운 오리 새끼 같다는 언니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누가 봐도 집의 분위기상 분홍색 오리는 한평생 몸 바쳐 충성을 다한 새까만 가마솥 옆으로 이사 온 빨간색 말하는 쿠쿠라고나 할까.(조금 부풀러서)
채팅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찬 공기가 내 손가락을 마비시켰다.
한 집에 사는 나와 남편의 기호도 다르고 나와 딸의 기호도 맞추기 어려울 때가 비일비재한데 어떻게 뭐라고 중재를 해야 하나. 내 머리 위로 나만의 생각 풍선이 하나둘씩 떠돌아다니다 또 다시 '카톡' 소리가 났다.
"큰 딸아,
네겐 수긍하긴 힘들겠지만 다른 그림으로 보니 김치 냉장고도 김 씨 집에 새로 이사 온 새댁이잖어 미워한다고 얼마나 속상했을까? 말은 못 해도..
내가 처음 시집가 안 예쁘다고 꽤나 말하던데.. 진짜 속상하더라. 눈물도 나고...
네 맘엔 안 들어도 한 울타리 가족으로 품어주자.
예뻐보니 예쁘다. 고맙다. 모두 다."
처음으로 엄마라는 베일을 벗기고 강미선이라는 한 여자와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을 20대에 수줍어했던 꽃 같은 신부 강미선 말이다. 김 씨 집안으로 시집간 미운 오리가 번쩍거리는 황금 같은 알(아들)들을 쑥쑥 나아야 할판에 빛깔 없고 밋밋한 알(딸)만 4개나 낳았으니 구박과 천대를 꼴깍꼴깍 삼켰야만 했던 그녀.
엄마의 메시지는 몇 년 전에 봤던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인 황정민(덕수)의 대사를 불러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에...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에..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에...
자녀들 앞에서 차마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아버지가 아닌 아들 덕수가 되어서 아이처럼 통곡 하는 장면이다. 덕수의 통곡은 우리 엄마의 울음이자 아빠의 눈물이었다. 자녀 앞에서 꼭꼭 눌어 두었던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꿈 많고 당당했던 강미선이라는 여자를 뒤로 밀어버린채 살았던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
곧이어 큰언니의 말풍선이 환하게 떴다.
"엄마가 정말 좋다고 픽하신 건데
넘 뭐라고 하고 화내서 죄송해요.ㅠㅠ
죄송하다고 느끼고 말할 거면서 왜 엄마 맘 아프게 했을까.
죄송해요. 엄마"
'죄송하다고 말할 거면서 왜 엄마 맘을 아프게 했을까' 나도 수천번 수만 번씩 했던 말이다.
나도 그렇게 용서 구하며 실수하면서 엄마가 되었으니까.
우리 친할머니는 눈부신 백조를 못 보고 돌아가셨다. 안과 밖의 아름다움으로 꽉꽉 찬 백조 밑에서 자란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