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친구들과 함께 비빔밥을 먹었다. 아침에 만들어둔 겉절이 김치와 감자전을 부쳐가며 기름 냄새가 가득한 게 제법 추석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뻘겋게 비벼진 밥을 먹으며 천재 음악가 린 마누엘 미란다가 얼마나 대단한지 불꽃을 튀기며 얘기 나누고 있을쯤 여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갑자기 조용해졌다. 목요일 오전, 여왕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BBC의 웹사이트 배경색이 빨간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꿨고 뉴스 앵커들과 수화 통역사 또한 검은색 옷을 입고 있을 때부터 조짐이 보이긴 했었다.
"25세 젊은 나이에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여왕 자리에 올라선 그녀가 70년 동안 행복했을까"
"행복했을 거야. 근데 남편 필립공의 별세 이후부터 부쩍 쇠약해진 거 같아."
"70년 동안 윈스턴 처칠로 시작해서 영국에 무려 15명의 총리가 탄생되었으니. 진짜 여왕은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지."
"맞아, 세계 2차 전쟁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도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할 때와 코로나 19 팩데믹때도 큰 역사 속에서 여왕의 자리를 담담히 지켰으니까."
"그럼, 여왕 폐하 Her Majesty The Queen의 이름으로 발행된 여권이 다 바뀌는 건가?"
"여왕 얼굴이 그려진 돈은 어쩌고?"
"영국 말고도 영국 연방 국가에 여왕 얼굴 새겨진 돈들도 있을 텐데."
"우표도 여왕 얼굴이고."
"그럼, 찰스 3세로 다 바뀌는 거네"
"그거 알아? 여왕은 여권도 필요 없다는 거? 얼굴이 여권이야."
"여권 말고 운전면허증도 없어."
"참, 아는지 모르겠지만 영국(스코틀랜드만 빼고)에 있는 모든 백조들이 다 여왕 꺼야."
"어디 백조뿐이겠어?"
추석을 맞은 우리의 대화는 여왕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늦게까지 이어졌다.
영국에 거주하는 한 사람으로 내가 기억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하나 됨과 화해에 힘썼던 사람이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거나 아예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있었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두 나라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2011년 아일랜드 방문 연설 중-
영국과 아일랜드, 두나라의 과거가 어땠길래?
하나의 아일랜드 국가를 두 조각 만들어버린 건 오래전(16세기) 영국의 간섭 때문이었다. 영국에선 아일랜드인을 아프리카 흑인처럼 '하얀 흑인'으로 부르며 야만인과 노예로 취급했다. 또한 비옥한 땅, 아일랜드 북부의 토지를 몰수해서 영국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쫓겨난 아일랜드 사람들은 서쪽 척박한 땅으로 떠나야만 했다. 산업혁명 후 북 아일랜드의 영국 사람들은 계속 부해지고 아일랜드에서는 대기근을 격게 되자 영국에 대한 반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1919년 아일랜드에서 의용군을 결성하고 2년 반 동안의 독립전쟁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결국은 아일랜드가 자체 국가임을 승인받게 된다.
여왕은 1920년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에 의해 학살된 ‘피의 일요일’ 현장도 방문했다. 이렇게 국왕의 방문이 100년 만이었다. 여왕은 그 당시 아일랜드 대통령이었던 매리 매컬리스 대통령이 두 나라 사이에 이해와 화해를 촉진하기 위해 대단한 일을 했다며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테러의 우려 속에서도 여왕이 아일랜드 더블린을 방문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화해를 향한 위대한 걸음이었다. BBC방송은 그날을 이렇게 기록한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당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한 말을 빗대어 '여왕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양국 간 역사에서는 엄청난 순간'이다”
목요일 오후 스코틀랜드의 발모럴 성에서 여왕은 평화롭게 사망했다. 왜 그녀는 버킹햄 궁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 발모럴 성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찬반 투표 후 분리 독립이 무산되었다. 내년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재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혹시 그녀는 스코틀랜드가 분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눈을 감고 싶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그녀가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밤이다.
여왕이 마지막 숨을 거둔 곳, 스코틀랜드 밸모럴성 balmoral cas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