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시골개, 그중 늙은 개 한 마리
친정에 아주 늙은 개 한 마리가 있다.
아주 늙어 짖지도, 걷지도 못하고 잠만 잔다.
느닷없이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받아온 잡종 강아지였다. 하필이면 그날이 나한테 너무 중요한 시험을 앞둔 밤이었고, 엄마 찾아 우는 강아지 울음소리를 들으며 안쓰러움보다 짜증과 한숨이 났었다. 그 후 결혼 전까지 4년 동안 나름 귀여워해줬다. 요즘 사람들 반려견 대하는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시골에서 집 지키는 ‘개’ 수준의 귀여움이었다. 사료를 뭐 먹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을 정도의 책임감 없는 귀여움이었다.
그리고 아이 키우며 어찌어찌 8년, 우선순위가 생기다 보니 뒷전이었고 오빠가 틈틈이 시골에 내려와 다 큰 개를 챙기는 게 이상하게 불편할 정도였다.
올봄이었나, 나는 아이들이랑 친정 마당에서 놀고 있었는데 오빠 내외가 개를 데리고 산책시킨다며 나가는 걸 보았다. 잘 걷던 준이가 갑자기 털썩 엎드렸다.
쉬려고 그러나 싶다가 인사도 안 한 게 미안해 준아-부르며 쓰다듬어주니 다시 벌떡 일어나 산책을 가더라.
인사하자는 거였구나,
요즘 잠만 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구나 싶으며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불쑥 올라오는 게 나 스스로도 가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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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아
다음 견생이나 인생이 준이 너에게 주어진다면
엄마 찾는 울음소리에 가슴 아파해주고 안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길 바랄게.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아서 미안해
책임감 없이 숱하게 키워졌던 수많은 시골개,
여기에 내 치의 기록을 남긴다.
2024.5.20. 이 글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한참 해 묵은 글이다. 뭐든 시작이 어려운 나는 글을 쉽게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늙은 개는 죽었다.
아주 더운 날이었다. 허리 다친 늙은 아버지의 병실에서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좀 우셨는지 코가 막힌 먹먹한 목소리로 준이가 죽었다 이모부가 오셔서 감나무 밑에 묻는다고 하셨다.
끊고 나니 숭숭 빠진 털에 헐떡거리며 숨 쉬던 늙은 개의 모습이 생각났다. 오래 고생했는데 잘 죽었다 싶으면서도 사랑을 많이 못 준 게 미안했다.
날은 푹푹 쪘고
병실 침대에 걸터앉아 혼자 울었다.
겨울이 지나 봉긋 솟아있던 감나무 밑의 얕은 둔덕이 푹 꺼졌다.
이듬해 봄, 까만 점이 박힌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 주위를 뱅뱅 돈다.
나는 안다.
이런 순간이 또 온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 치이긴 하지만 내 부모의 치가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