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화해

시골에서 자란 나

by gemma



부모님은 하양까망 젖소를 키웠다.



파란 트럭 운전을 잘하는 작고 씩씩한 엄마

나를 잘 업어주던, 나에게만 다정했던 아빠

세 살 어린 나와 잘 놀아주던 오빠

우리는 농장 옆 파란색 지붕 집에서 살았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시골에서 자랐다.

가령 가을이면 마을에 들어설 때 고추 말리는 냄새를 맡고, 발 끝에 치이는 들깨 낱알을 서걱서걱 밟았다.



마을 한가운데 학교가 있었는데 논 사이로 길게 뻗은 길을 걸어가야 했다. 모내기하기 전, 논에 물을 찰랑찰랑 가득 대면 바다 한가운데를 걷는 기분이 드는 길이다.


하지만 시골에서 자라난 여느 아이들처럼 점점 시골이 지루하고 답답하고 촌스럽고 부끄러웠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오던 파란 트럭이

조립식 파란 지붕 집이

젖소를 키우는 부모님이

촌스러운 마을 이름이

선택한 적 없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싫었다.

그래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시골을 떠난 여느 아이들처럼 도시에 뿌리내리려 갖은 진통을 겪었다. 이리저리 안간힘을 쓰다 한참 시간이 지나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파란 트럭도

파란 지붕도

젖소를 키우는 부모님도

촌스러운 마을 이름도 결국 다 나였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나는 나를 인정하지 못했다.

.

.

.

자극 없이 더디게 흐르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던 나날을 사실 마음 깊이 사랑해 왔노라고


이제야 말하는 나의 고백.


나와의 화해.







퇴직이 없는 직업인줄 알았는데 건강 문제로 축사가 정리되니 자연히 아버지는 퇴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부모님에게 보여드린 적 없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쓴 시를 남깁니다.







바다



여름방학이 끝난 교실


까맣게 탄 살이

하얗게 부스러지며

벗겨지는 아이들


목청 높여 호들갑 떨며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다.


뽀얀 팔을 서랍에 밀어 넣고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바다는 너무 멀었다.


하루 두 번 소가 짖어


젖을 짜내라

젖을 짜내라

내 젖을 짜내라


퉁퉁 불어버린 젖을 달고

시위하는 젖소들을 달래며

아버지는 사료푸대를 나르고

어머니는 분주히 젖을 닦아


생업이 업보는 아닐까

사료푸대 더미에 엎드렸다

바다는 너무 멀었다


부단히 업보를 삼켜낸 부모덕에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뒹굴다 지쳐

따뜻한 물에 모래를 헹군다


얼만치 가까워졌나 싶다가도

여전히 멀다.


너무 멀다.










여름휴가는 아버지와 먼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 하루 편히 자고 오면 좋겠습니다.






그림 gemma (종이에 수채화. 2025. h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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