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천재라서?
문제는 이들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이다. -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나는 만화가 지망생이었다.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팬이었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작화 변화를 지켜보며 노력하면 나도 이런 만화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현실은 썼고 전공을 비틀어 나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편으로 미술을 계속하고 있다.
표현욕구는 사라지지 않아서 산발적으로 그림과 글을 블로그에, 인스타에 때로는 스레드에 올리기 시작했지만 부족한 부분만 눈에 남았고 덩달아 따라오는 자기혐오의 시간을 적잖게 보냈다.
와중에 아들을 낳고 딸을 낳아 정신없이 살았다.
첫째와는 다르게 둘째인 딸은 벽에 낙서를 했다. 흰 벽에, 책상에, 식탁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연필로 낙서를 했다. 다행히 낙서를 시작하기 전에 보면 종이에 그리라고 종이를 얼른 내밀거나, 한참 딸이 낙서를 즐기고 난 후에 보면 한숨을 쉬고 매직블록으로 닦았다.
그런데 요 녀석이 내 그림에도 낙서를 했다.
딸을 수채화로 그렸는데 마음에 안 들어 한 장 더 그리려고 하던 찰나였다. 잠깐 재료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딸이 홀랑 낙서를 했다.
처음에는 황당하기도 했는데 가만 지켜보니 내가 그린 그림보다 딸이 그린 낙서가 더 예뻐 보였다.
무엇보다 힘이 느껴지고 자유로움이 느껴져서 그때부터 딸이 그리는 그림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내 그림은 아카데믹한 걸 버리지 못해 딱딱한 편이다.
딸이 천재라고 자랑하는 글이 아니다. 고맙게도 딸의 그림이 그런 수준이 아니라서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딸의 자유로운 그림은 나에게 숨통을 틔워줬다.
엄마!
그리는 게 뭐가 어려워? 나는 날마다 그리는데!
딸은 수선화 같은 노란색이다.
사랑이다.
자유다.
나와는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오늘도 딸이 그리는 그림을 즐겁게 본다.
25.11.29. 스레드에 올린 글
남편과 아이들이 외출한 텅 빈 집에 와보니
딸아이가 끙끙거리며 몇 번이나 연습한 고래 그림이
책상에 기다리고 있었다.
끝내 가슴지느러미 그리는 게 성공한 아이는
뿌듯해하며 엄마 오면 보여줘야지 생각하고 동그라미로 표시해 뒀겠지
.
.
종종 학생들이 언제부터 그림을 잘 그렸냐고 물어본다. 그럼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기 시작한 순간을 말해준다.
세일러문이 tv로 방영할 무렵 나는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연습장에 세일러문을 그리며 놀았다. 지금은 매체가 워낙 많으니 보고 그리고 싶으면 어떻게든 사진을 찾아보고 그리지만..
그때 당시에는 tv로 세일러문 본 방송을 놓치면 세일러문의 생김새를 보고 따라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tv로 볼 때 생김새를 눈으로 외우고 외우고 하다 교실에서 최초로 하트 앞머리 그리기에 성공했다.
친구들은 다 하트 앞머리의 디테일을 놓치고 원형으로 갈라지게만 그렸는데 내 하트 앞머리를 본 친구들이 어떻게 그렸냐며 또 그려보라고 하는 게 뿌듯한 기억으로 또렷하게 남아있다.
사실적으로 잘 그리냐로 아이의 재능을 평가하지 많았으면 좋겠다. 쌓이는 그림의 양에 따라 손기술은 자연히 늘어난다. 내가 기쁨을 느끼는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활자도 익히지 못하고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딸의 그림이 너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