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가 어때서...?
얼마전, 퇴근 후에 친구와 급 저녁 약속을 만들었다. 우리는 저녁 먹자는 말을 했지만, 그건 사실 맥주를 먹자는 공통된 숨은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밥집이 아닌 치킨집으로 향했다. 그리곤 치킨만 시킨게 아니라 골뱅이+치킨 세트에 맥주를 시켰다.
둘 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치킨과 골뱅이 소면, 맥주를 미친듯이 흡입했다. 그러면서 일 얘기, 미래 얘기, 친구 얘기, 돈 얘기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눴다.
맥주를 두잔 쯤 마셨을 때, 안주도 거의 다 떨어져 갔다. 이건 뭐 거의 돼지파티였다. 근데 내가 화장실을 다녀 오는데 "노가리 3000원"이라는 포스터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친구에게 "노가리가 3천원이래" 라고 운을 띄웠다. 친구는 "먹고싶어?"라고 되물어봤다. 솔직히 먹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말을 꺼냈겠지.
"아 근데 노가리 먹으면 안된대"
"엥 왜?" 친구는 내가 노가리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놓고 먹으면 안된다는 소리를 하니 궁금해 했다.
"어디서 들었는데 노가리는 새끼 물고기라서 먹으면 안된다고 했어"
나는 대단한 무언갈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평소 환경문제, 동물문제 같은 것들에 항상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저런 말도 어렴풋이 기억을 하고 있지않았다 싶다.
"근데 이미 죽어서 팔려온 애들을 어째"
친구가 MBTI의 대왕T같은 발언을 하는데 너무 너무 웃겨서 웃음이 그냥 튀어나오고 틀린 말은 아닌것 같기도 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명이라도 덜 먹고 수요가 줄어야 덜 잡지 않을까?"
"아니 그런건 우리 개인이 아니고 나라에서 통제를 해야지. 이미 쟤들은 죽어서 팔려왔는데 먹어야지 어떡하겠어"
그렇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먹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 하나가 안먹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나라도 안먹는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뭐랄까? 신념 비슷한 무언가일까...? 나는 스스로 어떤 생명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멸종되게 하는데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작은 노력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노가리는 시키지 않았다.
예전에 생긴 에피소드는 대학을 다니던 한때였다. 비건의 단계 중에 좀 낮은 단계를 지키고 살겠다며 고기를 안먹던 때가 있었다. 근데 못되먹은 친구들이 내 신념을 꺾으며, 만났을 때 고기를 먹자고 하고 내 돈도 나눠서 내는 상황인데 고기를 시켜야된다고 강요했다. 지금이였으면 단박에 연을 끊었을 수도 있는데 그땐 어려서 그렇게까진 안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누군가의 신념을 짓밟고 무시하는 행위를 하는 건 무식하고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그 행동을 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거나 존경받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닌데 개인의 작은 노력들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싫다.
결국은 그 친구들과는 다른 이유 때문이지만 연을 끊었다.
그래도 얼마전 치킨집에서는 친구가 노가리 말고 다른걸 먹자는 나의 말에 토를 달거나 욕을 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다른 메뉴를 먹는 것에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음에 고마움을 느꼈다. 이래서 내가 이 친구랑은 오래동안 만나오고 있구나 싶다.
그리고 글을 쓰며 알아보니까 노가리는 명태의 새끼로 15cm이하는 포획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 치킨집에서 팔고 있는 노가리는 그 이상의 사이즈이겠지?
그래도 그냥 내 고집대로 노가리 안먹고 더 비싸지만 먹태나 사먹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