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방학이지만 병원 실습관계로 나는 청도에서 대구로 매일 기차통학을 하고 있다. 지난주는 데이 근무번으로 청도에서 출발하는 새벽 첫 기차를 타고 대구로 가야 했지만 이번주는 이브 근무번으로 오후 2시까지 병원에 도착해서 실습하고 대구역에서 밤 10시에 청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청도역에 내리면 된다. 기차에서 내려 청도 역사를 나오면 주위에 불빛이 거의 없는 칠흑 같은 어둠만 고요하다. 역 앞에 세워둔 차를 몰고 집에 도착하면 동네에서 우리 집만 불이 환히 밝게 빛나고 있다. 아직 집으로 안 돌아온 엄마를 기다리느라 늦은 시간까지 딸과 남편이 잠 도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어머니의 하루는 어땠느냐고 묻자 남편이 말도 마라면서 손사래 치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어머니 방에서 뒷마당 텃밭 쪽으로 나 있는 큰 창문으로 뛰어내려서 거꾸로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땅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도 어떻게 알게 됐냐면, 우리 집에서 키우는 실내견 행복이가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도 시끄럽게 할머니 방을 향해서 짖었다고 한다. 행복이가 이유 없이 짖어대는 녀석이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 방에 들어가 보니 창문이 활짝 열어져 있고, 어머니가 온 데 간데없다고 했다. 귀가 보통 사람보다 밝은 편인 남편은 거실에 쭉 있었는데 특이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뒷마당 텃밭 쪽에서 나지막하게 신음하는 소리가 나서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어두컴컴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경사진 사면을 따라 물구나무서기 비슷한 자세로 고꾸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거실로 와서 혹시 어디 다친 곳이 없는가 몸을 여기저기 살펴봤는데 천만다행으로 나무와 잔가지에 긁힌 흔적 말고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아 보였다고 한다. 날이 밝은 대로 아침 일찍 병원에 모시고 가서 뼈 사진을 찍어 봐야 하겠지만 외관상으로는 괜찮은 것 같아서 긁힌 곳에 연고 바르고 반창고 붙이는 정도로 치료하고 방에서 쉬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내가 어머니 방을 들여다봤을 때는 잠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어머니께 어제 왜 창 밖으로 뛰어내렸는지 이유를 물었다. 어머니는 자기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어떤 모르는 여자가 창문 밖에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창문을 열고 그냥 나갔는데 그다음은 기억이 없다고 하셨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제법 커서 조금 쌀랑하게 느껴지는 요즈음 같은 날씨에 만약에 행복이가 짖어대서 남편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불 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곳에 고꾸라진 채로 추위에 떨다가 저체온증이나 저혈당으로 밤새 안녕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병원에서 뼈에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정말로 운이 좋은 경우였다. 행복이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열심히 짖어댄 덕분에 어머니를 또 한 번 죽을 고비에서 구해 낸 것 같아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일을 계기로 어머니의 치매 증상으로 혹시나 배회하는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치매안심센터에 배회감시장치 신청을 했다. 배회감시장치는 시계처럼 팔에 착용하는 것으로 보호자의 휴대폰에 앱을 깔아 두면 착용한 시계와 연동이 되어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신청인이 너무 많아서 대기를 해야 하고 대신에 옷에 붙이는 스티커 형식의 인식표를 신청하면 바로 지급할 수 있다고 했다. 배회감시장치는 대기를 걸어 놓고 아쉬운 대로 붙이는 스티커를 한 통 받아 왔다. 평소에 어머니가 입으시는 옷의 안 쪽에 스티커를 올려놓고 다리미로 열을 가해서 다리면 자동으로 옷에 부착이 되는 형태로 세탁을 해도 스티커가 뜯겨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열심히 다림질을 해서 인식표를 부착하고 나니 이제 마음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어머니가 혹시나 길을 잃어버리거나 집을 못 찾아와도 옷에 인식표가 부착되어 있으니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만 하면 어떻게든 가족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예전에 청도에 처음 내려왔을 때의 일이 떠 올랐다. 그때가 3월이었는데 한 밤 중에 동네 개들이 동네가 떠날 듯이 요란하게 짖어댔다. 나는 산짐승이 마을로 내려와서 개들이 짖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이웃집으로 부터 전해 듣기로는 어떤 할머니가 잠옷바람으로 이 추운 겨울에 신발도 안 신으시고 길을 배회하셔서 동네 아주머니께서 배회하고 계신 할머니를 경찰에 신고해서 모시고 가게 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동네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는데 할머니는 경찰에게 무사히 인도되어 집을 제대로 찾아가셨는지는 모른다. 기억도 잃어버리고 가족도 잃어버리고 어디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남겨진 가족들은 얼마나 상심이 크겠는가. 아무튼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앞으로 길을 잃고 배회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려야 하겠고, 혹시라도 배회할 경우를 대비해서 가족 중에 치매가 있으면 이런 인식표 같은 스티거나 연락처 정도는 항시 부착하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한 눈 파는 순간에 집을 나가서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인식표를 옷에 부착해 드렸지만 안심하기에는 부족하다. 치매를 가진 가족들과 함께 우리 이웃과 마을 공동체, 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활동들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