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가을, 긴 감사

가을의 끝에서, 담양 관방재림을 걷다

by 도로미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해야 할 일이 분명했다.
뚱이랑 담양 관방제림에 가는 날이었다.


전날 구름이 많고 비가 간간이 내렸는데,
오늘은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이불을 걷고 부랴부랴 나갈 준비를 했다.
이런 날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담양 관방제림까지는 약 35분.
집을 나서 내장산을 통과하는 국도를 달렸다.
눈앞에 펼쳐진 높고 푸른 하늘, 하얀 구름,
그리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등성이들.
겹겹이 둘러싼 산의 웅장함을 마주하니
문득 단군께서 땅을 잘못 고르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조상들은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돌을 골라 땅을 다지고, 수없이 되풀이했을 그 고단함.
산을 뚫고 터널을 내며 길을 만든 아버지들의 피와 땀.
그 위를 나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그 사실이 문득 감사하게 다가왔다.
좋은 시대에 태어나 편히 살아간다는 것,
그 마음을 조용히 간직하고 싶었다.


조수석에는 뚱이가 앉아 있었다.
간만의 외출이 신이 난 듯 창밖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11월의 초겨울 바람은 제법 매서웠다.


알록달록 물든 나무들은
자태를 뽐내기도 전에 겨울의 기세에 밀려
붉게 물들다 바스러진 잎사귀를 우수수 쏟아냈다.
나는 옷깃을 여미고, 방방거리는 뚱이를 붙잡은 채
가을의 서운함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올해는 유난히 짧아진 가을이었다.
스산하지만 눈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었다.
공연히 마음이 시려왔다.


11월 초, 동장군이 성급하게 다가온다.
차가운 바람이 몸을 스친다.
얼마나 많은 한파와 폭설이 닥칠까 걱정도 되지만
우린 안다.
그 겨울도 잘 견딜 것이며,
언젠가 봄기운 속에 사라질 것을.


밤이 내린다.
먹물빛 창문 너머로 가로수 불빛이
보석처럼 어둠을 붙잡는다.
갓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 오늘 하루를 천천히 내려놓는다.



#담양관방제림 #가을여행 #에세이 #감성산책 #반려견과 함께 #자연에세이 #삶의 감사 #도로미에세이 #일요일기록 #계절의 끝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돌아온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