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이후, 인간의 이중성

by 도로미

선악과를 먹은 이후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인간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존재가 아니라, 선과 악을 동시에 인식하게 된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 순간부터 인간은 단순히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틀린 선택을 하고,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또다시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이 모순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


인간의 고통은 여기서 시작된다. 불합리함을 인식하는 능력. 모순을 자각하는 감각.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시선.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미안함을 느끼고, 정의를 말하면서도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 침묵한다. 이중적인 마음은 약함이 아니라, 너무 많은 가치를 한 몸에 담고 살아가는 존재의 증거다.


그래서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려고 한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언어로 바꾸고, 정리되지 않는 혼란을 예술로 남긴다. 르네상스의 건축과 회화, 문학과 음악은 완전함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인간은 불합리함을 제거하지 못하자, 그것을 품은 채 다른 방식의 완전을 꿈꾸기 시작했다.


거울을 볼 때 우리는 항상 반대 방향의 나를 마주한다. 그 모습은 낯설고, 때로는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이 그것 또한 나다. 인간은 스스로를 직접 볼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언제나 반사된 모습으로만 자신을 이해한다. 타인의 시선, 기억 속의 나, 후회의 얼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를 통해서.


그래서 인간은 평생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이 모순을 어디까지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가’를.


선악과 이후의 인간은 불완전해졌지만, 그 불완전함을 인식하는 능력 덕분에 질문하는 존재가 되었다. 질문은 답보다 오래 남고, 답보다 깊다. 인간은 완전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이해하려 애쓰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인간은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고, 모순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린다. 그 모습이 때로는 우스워 보이고, 때로는 처연해 보일지라도, 나는 그 비효율적인 몸부림 속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를 본다.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도 인간이 여전히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불완전한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그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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