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구멍

정말 잘 견뎌줘서 고마워

by 도로미

오늘은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루 종일 업무에 치여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왔고,
그저 자판을 두드리는 손끝만이 나를 버티게 했다.


일은 끝나지 않았지만
오늘만은 야근할 수 없었다.
몸은 이미 아래로 가라앉고,
머리는 멍했고,
커피잔은 비어 있었지만
그걸 다시 채울 힘조차 남지 않았다.


퇴근길,
전북대학교를 지나 내장산이 눈에 들어왔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숨이 턱 막혔던 내 마음의 구멍을
조용히 열어주었다.


집으로 바로 향하지 못하고
텅 빈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흙냄새, 바람, 그리고 그들 속에 섞인
보이지 않는 영양분이
내 안으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데나 시선을 두고 있으면
하늘이 보이고
벤치 옆, 작고 둥근 수국이 보인다.


그리고 문득
몽글거리는 구름 사이로
뚱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일어나,
오직 나만을 기다리고 있을
뚱이를 향해 천천히 집으로 돌아간다.


살다 보면,
오늘처럼 버겁고 서러운 날이 있다.
누구도 내 마음을 몰라줄 것 같고,
그저 누군가에게
나 힘들어요” 하고 소리치고 싶은 날이.

그럴 때 내 안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오늘도 잘 버텨줘서 고마워.
지금 너, 정말 잘하고 있어.”


그 말은 누군가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나, 혹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지친 어깨를 조용히 감싸며 말하는 위로다.


오늘, 지쳐버린 당신에게
말없이 다가오는 평화와 안식이 고요히 찾아가길.



✍️ 작가의 말

유난히 숨이 막히던 하루,

말 대신 눈물로 저녁을 맞이하던
내 마음에서 태어났습니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그때,
나는 비어 있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연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구름 사이로 뚱이의 얼굴이 떠오르며
나는 다시 걸어갈 힘을 얻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토닥이는 일이고

누군가를 안아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용한 숨구멍 하나가 되어주기를,
잠시 머무를 수 있는 벤치 한 칸이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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