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서로를 존중해야 할까? 능력인가, 속도인가, 성과인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한 가지에 다다랐다.
존중은 결과가 아니라, 질문의 경로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판단한다. 뉴스를 보고 직업을 보고 타인의 선택을 보며
이미 결론을 알고 있다는 듯 반응한다. 이건 생각의 부족이 아니라 사고의 자동화다.
생각하기 전에 결론이 튀어나오는 상태. 하지만 인간다운 순간은 대개 여기서 시작된다.
한 박자 늦추는 것.
“잠깐, 이 생각은 어디서 왔지?”라고 묻는 것. 이 질문 하나가 비난을 멈추고 경쟁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같은 답을 가질 때 안심한다. 비슷한 선택 비슷한 결론 비슷한 속도.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려 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묻는다.
“왜 나와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종종 이렇게 판단해 버린다.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존중은 이해의 속도에서 오지 않는다. 존중은 견딤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같은 답을 가졌을 때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질문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있을 때 비로소 서로를 존중한다. 그리고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질문을 어떤 조건 속에서 통과하고 있는지를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질문은 가난에서 태어나고 어떤 질문은 책임에서 생겨나며 어떤 질문은 상실과 두려움 속에서 시작된다.
겉으로 보이는 선택만 놓고 보면 쉽게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질문이 태어난 환경과 시간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말을 아끼게 된다. 존중이란 상대의 결론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조건을 인정해 주는 일이다.
그래서 존중은 빠를 수 없다. 질문을 듣고, 그 질문이 통과한 시간을 상상하고, 판단을 잠시 미루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느린 태도야말로 지금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부족한, 그리고 가장 필요한 인간다움이다.
AI는 질문을 받으면 형태를 만들어준다. 정리하고, 확장하고, 구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의미는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 질문을 왜 했는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어디에 도착하고 싶은지는 질문한 사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답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다.
AI와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습관처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준은 더 빠르게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라, 생각이 자동으로 흘러갈 때 멈출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기준은 같은 결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질문을 견딜 수 있는 태도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질문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결론을 요구하기 전에, 설명을 강요하기 전에, 그 질문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고 있는가.
이 질문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각자의 삶에서 천천히 생각해도 충분하다.
이 글 역시 결론이 아니라 다음 질문을 위한 자리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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