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뚱이다!

5화 펜스가 사라진 날

by 도로미

드디어 내 주위에 있는 펜스가 사라진 날이다.
오빠가 엄마를 졸랐던 것도 한몫했지만, 사실은 나도 더 이상 그 펜스 안에서 자는 것이 어색해졌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펜스 너머로 침대에 누운 엄마의 머리가 보이면, 나는 자꾸 그 품으로 파고들고 싶어졌다.

이제 내 시야를 가리던 펜스가 사라졌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다가갔다.


내 꼬리가 저절로 살랑거렸나 보다.

엄마가 나를 보며 웃었다.

“엄마! 뚱이도 좋은가 봐!”

오빠는 멍청해 보이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또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아 쫌…”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갑자기 나를 번쩍 안아 들거나 뽀뽀를 하려고 들이대면 솔직히 말해 확 물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빠가 그 허당 같은 웃음을 짓고 있으면, 나는 그냥 생각한다.

아… 저 오빠는 조금 모자란 사람인가 보다.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반면 엄마는 다르다.
엄마는 나를 갑자기 번쩍 안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쓰다듬어 준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조용한 사랑 방식이 좋다.


“엄마가 말했잖아! 갑자기 뚱이를 안아 들면 안 된다고. 천천히, 부드럽게…”

엄마의 말을 들은 오빠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싫어.”

나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게… 어디서 오빠한테…”

오빠는 약하게 내 머리를 톡 치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오빠가 화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밤, 엄마 발치에서 곤히 자고 있던 나를 오빠가 다시 안아 갔다.

잠결에 나는 그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사실… 그게 오빠인지도 몰랐지만...


어느 날에는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

“뚱아! 엄마 돈 벌고 올게.”

그리고 오빠도 말한다.

“뚱아! 오빠 학교 다녀올게.”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집 안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조금 전까지 북적이던 공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럴 때면 나는 얼른 베란다 창문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엄마와 오빠가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본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집 안으로 돌아온다.


밤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날이면 나는 엄마 침대로 올라가 잠을 청한다.

엄마의 냄새.

그리고 오빠의 냄새.

그 냄새 속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아마… 나는 이제 버려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사랑받으며 자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엄마는 곱게 차려입고 나를 이동장에 넣었다.

그리고 차를 몰고 어딘가로 향했다.

차가 멈춘 곳은 5층짜리 오래된 빌라였다.


“뚱아! 이모네 집이야. 이모가 널 참 좋아할 거야.”

엄마가 말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동장에서 나와 엄마 품에 안겼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건가?
조금 기대도 되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방광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아... 큰일이다.

“엄마! 나 오줌 마려워요! 아무 데나 내려줘요!”

나는 온몸으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엄마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오히려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뚱아, 조용히 좀 해.”


문이 열리자 엄마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다.

단발머리인 엄마와 달리 이모는 짧은 쇼트커트였다.

“어머! 얘가 뚱이야? 와아아 너무 귀엽다!”

“그렇지? 요즘 뚱이 때문에 웃는 날이 많아졌어.”

“다행이다. 언니… 하하하.”


그들이 웃는 동안에도 내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절대로 엄마 품에서는 안 된다.

엄마에게 내 오줌을 뒤집어쓰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건… 강아지로서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니까.


그때 엄마가 방 안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어머! 이 카펫 너무 고급져 보인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결심했다.

그래. 여기다.

나는 그 고급스러워 보이는 카펫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시원하게 오줌을 누었다.

방광이 비어가며 온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으아아아아악 언니가 이 이이 이!”

이모의 비명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엄마의 당황한 표정.

이모의 절망적인 얼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척 앉아 있는 나.


그렇게 나는 이모네 집에서

아주 확실하게

첫 번째 영역 표시를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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