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 브로코비치- 분노를 넘어선 용기 그녀와의 대화
� 에린 브로코비치, 그녀는 누구인가?
에린 브로코비치는 법률 교육도, 변호사 자격도 없었던 평범한 싱글맘이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힝클리 지역의 지하수 오염 문제를 발견하고,
변호사 에드 마슬리와 함께 집단 소송을 이끌었다.
이 소송은 PG&E(Pacific Gas and Electric Company)로부터
당시 환경 소송 사상 최대 합의금인 3억 3천3백만 달러를 이끌어냈다.
그녀의 활동은 전 세계 환경 정의 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줄리아 로버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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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미
에린, 당신의 이름은 이제 정의의 상징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 길은 외로웠지요?
�에린
맞아요. 그때 난 세 아이를 혼자 키우던 엄마였고, 변호사도 아니었어요.
다만 분노와 집요함이 있었죠. 피해자들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피부에 난 종기와 고통을 보며 '이건 싸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도로미
에린, 모두가 포기한 싸움을 이어갔죠. 그때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에린
화가 났어요. 피해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피부에 난 종기와 고통을 보며
‘누군가는 싸워야 한다’고 느꼈죠. 분노는 나를 집요하게 만들었고,
그 집요함이 나를 지켜줬어요.
�도로미
분노는 당신에게 무엇이었나요?
�에린
분노는 나를 살린 불이에요. 많은 사람들은 분노를 억누르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밖으로 꺼냈어요. 그리고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만들었죠.
�도로미
영화에서 피해자들의 전화번호를 수백 개 외우던 장면이 나와요.
실제로도 그랬나요?
�에린
네, 전 기록보다 사람을 믿었어요. 이름, 가족 관계, 전화번호까지 외웠죠.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딸, 에이미는 학교 잘 다니죠?”라고 말하면
그들은 놀랐고, 제 진심을 느꼈어요.
�도로미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도 갈등이 있었다고요.
�에린
아이들은 늘 엄마가 바쁘다고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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