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다 May 22. 2021

그녀와 나

일곱 살의 정경

그녀와 나는 그늘 한 점 없는 큰 운동장에서

탱크 모양의 놀이기구를 탔다.

그 탱크라는 것에서는 조잡한 노래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탱크는 오백 원. 탱크는 한껏 신이 난 내 마음을 계속해서 분탕질하며 오백 원의 시간만큼 노래를 불러댔다. 쉬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집 앞에 핀 꽃은 예쁜 이름 모를 꽃들

그녀와 나의 꽃이 아니다. 이 집 누군가의 꽃이다.

대문 밖 긴 긴 골목에는 민들레가 자주 피었다.

그것은 나의 것. 그녀의 것. 아무개의 것이 되었다.

그녀는 무엇이든 잘 만들었다.

예쁜 공주의 얼굴 그림. 그중 가장 아름다운 건 커다란 눈이었다.

짭짤한 계란찜, 빨간 콩나물, 생선 튀김

그리고 마당 바닥에 수없이 떨궈대던 퐁퐁 비눗방울

혼자 눈을 뜨고 있는 밤이면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녀 품에 이마를 대었다.

정수리에 규칙적으로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게 신경 쓰이다 그것을 의지해 잠이 들었다.

그녀의 지극히 사적인 것은 모두 나의 것이었다.

가슴팍에 레이스가 달린 살구색 나일론 잠옷

금테가 둘러진 자줏빛 립스틱은 내가 사랑했던 물건들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골목골목을 앙상한 종아리로 달렸다. 내가 좋아하는 차림으로. 어깨에 끈이 달린 줄무늬 원피스와 반짝이 고무 샌들. 발 끝에는 노란 고무공을 차며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까지 뛰어다녔다.

그녀는 늘 내 곁에 있었다. 낮과 밤에. 골목이던 집이던.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앞만 보고 뜀박질을 해댔다.

-

오늘은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안해. 엄마가 하는 말 맘에 두지 마.'

나이가 서른셋이나 먹은 나는 나일론 잠옷도 있고

금테 두른 립스틱도 있다.

계란찜도 잘한다.

-

설핏 등 냄새가 난다.

맞아.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있다.

그래도 아름다운 조각들이 있다.

분명하게 아름다운 것들

아직 답장은 보내지 못했다.

-

첫째가 내 립스틱을 훔쳐 바른다.

'미안해. 엄마가 하는 말 맘에 두지 마.'

답장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이전 02화 싼티 콤플렉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