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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May 20. 2021

싼티 콤플렉스

귀티 어디 가면 팔아요?

열다섯 살 내 운동화는 '세븐스타'였다.

'올스타' 컨버스가 유행했을 때였는데도,

내 운동화는 짝퉁 세븐스타였고 뒤축이 다 까질 때까지 열심히 신었다.

그때는 그게 딱히 부끄럽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소풍이며 수학여행 때마다 유명 브랜드 옷을 입고 나타날 때에도 나에게는 흔한 나이키 티셔츠 한 장 없었다.

역시 부끄럽지 않았다. 정확히 해두자면, 그런 것이 주는 우쭐한 기분이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부끄러운지 '몰랐다.'

-

가방 만원, 티셔츠 오천 원, 바지 만원.

나의 20대. 옷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3만 원을 넘지 않았지만, 그때는 무엇을 입던 그대로의 멋이 있었던 것 같다. '싼티'나는 옷도 젊은 날이 뿜어내는 동력(動力)을 저렴하게 하지는 못했다.

-

신혼 초에 남편은 종종 옷을 사주었다.

내 눈에도 결혼 전에 입었던 옷들을 계속 입기에는 변한 나의 위치와 역할에 맞지 않았다.

처음 10만 원이 넘는 단정한 원피스를 입었다.

가게 거울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남편과 점원의 시선을 받고 있자니 부끄럽고 불편했다.

나에게는 버거운 액수의 옷을 걸치고 나니 이상한 죄책감마저 들어서 잘 어울린다는 남편의 칭찬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얼른 계산하고 나와버렸다.

'10만 원이면 옷이 몇 벌이야..? 아휴 아까워.'

-

'아깝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많이도 들으며 자랐다.

나의 어머니는 절약이라는 좋은 습관은 주셨지만

적절한 소비의 즐거움은 가르쳐준 적이 없다.

그래도 나는 이해한다. 존경한다. 감사하다. 그리고

죄송스럽다.

-

안타깝게도 어려서부터 만들어진 나의 '태'는 브랜드 원피스를 걸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았다.

너는 좀 싼티가 나잖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싼티 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별스럽지 않았던 걸 보면 아마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 알아요. 나 싼티 나지.

사실 싼티 난다는 말은 저렴한 옷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분위기와 여태껏 지내온 모든 배경을 아우르는 것임을 알고 있다.

스스로에게 검소함이 궁상으로 인지된 순간부터 그 궁상이 뿜어내는 싼티를 벗어내고 싶은 의지가 생겼지만 몇 푼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귀하게 길러지지 못한 모양으로 보인 게 엄마에게는 죄송스러웠다.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죄송스럽다가 서러워졌다.

-

요즘도 거울을 보거나 내가 찍힌 사진을 볼 때 가만히 찾아본다. 싼티 나나?

내 싼티가 아이들에게도 입혀지면 어쩌지.

별 얄궂은 싼티 콤플렉스가 다 있다.

아이들에게 브랜드 운동화며, 구두 같은 것을 신긴다.

신발장에 '세븐스타' 같은 것은 없다.

머리는 가르마를 신경 써서 타고 깨끗하게 묶어준다. 얼굴에는 반질반질 크림도 발라댄다.

 '엄마 좀 봐봐.' 하고 아이를 쳐다본다.

귀티 나나?

싼티가 난다 한들, 귀티가 난다 한들, 별수 있나.

나의 어머니가 당신도 어쩔 수 없이 세어 나오는 말과 나름의 지혜로 나를 키우셨듯이 나도 세어 나오는 그것을 어쩔 도리가 없다.

세븐스타를 신어도 주눅 들지 않는 마음을 갖도록 해줘야 할 일인데 엄마인 나도 어쭙잖은 물질적 안목으로 '태'를 재는 걸 보니 정말 부끄러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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