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새끼
열두 살 무렵 내가 가진 최대 고민은 나의 까만 얼굴이었다.
어린 마음에 나름의 속상한 일들이 생길 때면 전부 까만 얼굴 때문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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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갓집은 인천에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설 명절마다 외갓집엘 갔었는데
그맘때가 되면 어린 나는 늘 울적해졌다.
이종사촌은 셋. 모두 여자아이들이었다.
나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때문에 여자아이들만 버글버글한 집에 제일 어린 유일한 남아로서 때마다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한 뱃속에서 나왔는데도 우리는 서로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다.
동생의 눈처럼 흰 얼굴에 큰 눈을 볼 때면 나는
엄마가 야속해졌다.
평소에는 내 말은 듣지도 않는 고것이 저처럼
얼굴이 허연 사촌누나들을 만나면 아기가 되어서
잘 따르고 나는 본체만체 어울려 노는 것도
얄미웠다.
그럴 때면 나는 미운 오리 새끼를 생각했다.
책 표지에 혼자 입을 쭉 내밀고 (오리니까 입이
나와있는 게 당연하지만 어쩐지 더 밉상스럽게 쭉 내민 것처럼 보였다.) 눈물을 한 방울 흘린 채로
하얀 백조 무리를 곁눈질로 흘끔 보고 있는 그 미운 오리 새끼.
내가 아마 그 미운 오리새끼리라.
그중에 제일은 나를 부르는 이모부였다.
이모부는 나만 보면 '촌년!' 하고 불러댔다.
이제는 지난 일이니 나름의 친근함의 표시라고
미화시켜주려 해도 아직도 내키지 않는 게 바로 그 촌년! 소리이다.
그렇다면 왜 내 동생은 촌놈!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인가. 아마도 이게 다 까만 얼굴 탓이리라.
'아빠가 나서서 한마디 해주시면 좋겠다.'
어린 마음에 그런 기대를 했지만 슈퍼맨 아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애석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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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왼쪽 첫 번째 줄에 앉은 여자아이.
나는 그 아이를 마음속으로 참 좋아했다.
깨끗하게 하나로 묶어 땋은 긴 머리에 얼굴은
하얗던 아이였다. 이름도 기억하고 있다.
어찌나 선망의 대상이었던지 몇 해 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딸이라면 그 아이 이름을 따라 지으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때의 나는 그 애와 몇 번이고 친해지고 싶었지만 어쩐지 그 애 옆에 서면 너무도 다른 얼굴색을 보고 누가 놀릴까 싶어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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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날은 학교에서 다 같이 등산을 갔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한 여선생님 옆에서 걷게
되었는데 나는 그분을 잘 알지 못했지만
그 선생님은 대뜸 '얘들아. 얘 참 예쁘지 않니?'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인 줄도 몰랐다.
'예쁘게 까놓은 구운 계란 같잖아.
아마 크면 아주 예쁠 거야.'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런가? 하고 흘끔 쳐다보는 친구들의 시선에
나는 조금 우쭐해지기도 하고 쑥스러워지기도 했다.
그래. 나는 예쁘게 자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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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미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여전히 내 얼굴은 까맣다.
열두 살이 아닌 나는 까만 얼굴로 울적하지도 않고 그런 순수함도 엷어졌지만, 나를 닮아 조금 까만
첫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예쁜 구운 계란을
생각한다. 그 날의 등산과 귀여운 칭찬과 가벼운
격려를 생각한다.
'예쁘게 까놓은 구운 계란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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