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접
아빠의 신발은 *십구 문 반
키는 일곱 척쯤 돼 보였다.
어린 나는 아빠를 세게 꼬집었다.
"아빠. 아파?"
-"아파."
아빠는 늘 무미건조하게 '아파.'라고 했기 때문에
'역시 커다란 아빠는 아프지 않구나!' 하며 매일
꼬집고 매일마다 아빠가 의연한지 확인했다.
고약한 버릇이었다.
아빠의 등은 아주 널따랬다.
나는 그 등에 불규칙적으로 박힌 점을 세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 등에 가뿐하게 업혀 손깍지를 아빠의
목에 단단히 동여맸다.
"아휴 아퍼. 어깨를 잡아."
나는 아빠가 아프다고 하는 것이 맘에 없이 꾀병을 부리는 것 같아 듣는 둥 마는 둥 더 세게 매달렸다.
아빠 자전거에 달린 작은 의자에 앉아 페달도 밟지 않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녔다.
동네를 다닐 때면 원피스 차림에 귓등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 분홍 코스모스 같은 것을 늘 꽂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길가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크면 아빠랑 결혼할 거야."
-"그 마음 변하지나 말어라."
아빠와의 결혼은 고사하고 늦게 늦게 결혼할 거라던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그렇게 결혼한 나의 남편은 내 억지스러운 장난도 잘 받아주고, 자전거 대신 자동차를 태워준다.
일 년에 몇 차례 여행을 다니며 사진도 찍어주고,
기념일엔 싱싱한 생화 꽃다발을 안겨준다.
아빠보다 더 나은 것들을 주는 남편이 있으니 어느 틈엔가 아빠는 나에게 꽤 시시한 남자가 돼버렸을지 모른다.
아빠의 발은 십구 문 반이 안되고 키도 일곱 척에서 한참 모자란다.
-
그렇지만 그런 남편도 딱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키는 나의 아빠와 비슷하지만 영 좁은 등판이 업힐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보. 나 좀 업어줘 봐." 라며 냉큼 업혔더니
"흐읍"하며 괴로운 소리를 내길래 얼른 내려온
뒤로는 업힐 생각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쳇, 아빠는 지금도 나를 업으라면 업어줄 것이다.
지금이라도 꼬집으면 '아프다.' 라며 꼬집힐 테고
자전거를 태워달라면 동네마다 태우고 다니며
아무 들꽃이나 꺾어 귓등에 꽂아줄 게다.
'흐읍'이라는 나약한 소리는 내지도 않지.
-
"너는 예쁜 얼굴은 아니니까 커서도 어딜 가던지 얼굴로 눙치려 들지 마라. 네가 가진 능력으로 해내야 돼."
좀 더 자라고 나서부터 아빠에게 내내 듣던 말이다.
어느 아빠들은 딸더러 '공주'라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내내 부러웠는지 다
커서 아이까지 낳고도 공주소리 한번 들어볼
심산으로 따지듯이 물었다.
"아빠. 나는 안 예쁘잖아. 아빠도 나한테 예쁘다고 안 해줬잖아. 정말 한 번도"
그때 아빠는 부끄러워하셨다.
언제 그랬냐며 조금 횡설수설하셨는데 그날 이후로 몇 번인가 나를 두고 '예쁜'이라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으셨다.
"나는 너를 정-말 예뻐했어. 자전거에 태우고 여기저기 다니고,.."
나는 아무때나 아빠를 말로 꼬집어대는걸 보면
여전히 고약한 버릇을 고치지 못했으며, 여태껏
받아온 공주대접은 새까맣게 잊었나보다.
길에 핀 무수한 꽃다발과 나에게 준 소박하고
꾸준한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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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 '가정'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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