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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May 29. 2021

고약한 버릇

공주대접

아빠의 신발은 *십구 문 반

키는 일곱 척쯤 돼 보였다.

어린 나는 아빠를 세게 꼬집었다.

"아빠. 아파?"

-"아파."

아빠는 늘 무미건조하게 '아파.'라고 했기 때문에

'역시 커다란 아빠는 아프지 않구나!' 하며 매일 

꼬집고 매일마다 아빠가 의연한지 확인했다.

고약한 버릇이었다.

아빠의 등은 아주 널따랬다.

나는  등에 불규칙적으로 박힌 점을 세는  

좋아했다.

그리고  등에 가뿐하게 업혀 손깍지를 아빠의 

목에 단단히 동여맸다.

"아휴 . 어깨를 잡아."

나는 아빠가 아프다고 하는 것이 맘에 없이 꾀병을 부리는 것 같아 듣는 둥 마는 둥 더 세게 매달렸다.

아빠 자전거에 달린 작은 의자에 앉아 페달도 밟지 않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녔다.

동네를 다닐 때면 원피스 차림에 귓등에는 이름 

모를 노란 , 분홍 코스모스 같은 것을  꽂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길가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나는 크면 아빠랑 결혼할 거야."

-"그 마음 변하지나 말어라."

아빠와의 결혼은 고사하고 늦게 늦게 결혼할 거라던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그렇게 결혼한 나의 남편은 내 억지스러운 장난도 잘 받아주고, 자전거 대신 자동차를 태워준다.

일 년에 몇 차례 여행을 다니며 사진도 찍어주고,

기념일엔 싱싱한 생화 꽃다발을 안겨준다.

아빠보다 더 나은 것들을 주는 남편이 있으니 어느 틈엔가 아빠는 나에게 꽤 시시한 남자가 돼버렸을지 모른다.

아빠의 발은 십구 문 반이 안되고 키도 일곱 척에서 한참 모자란다.

-

그렇지만 그런 남편도 딱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키는 나의 아빠와 비슷하지만 영 좁은 등판이 업힐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보. 나 좀 업어줘 봐." 라며 냉큼 업혔더니

"흐읍"하며 괴로운 소리를 내길래 얼른 내려온 

뒤로는 업힐 생각은   다시 하지 않았다.

쳇, 아빠는 지금도 나를 업으라면 업어줄 것이다.

지금이라도 꼬집으면 '아프다.' 라며 꼬집힐 테고 

자전거를 태워달라면 동네마다 태우고 다니며 

아무 들꽃이나 꺾어 귓등에 꽂아줄 게다.

'흐읍'이라는 나약한 소리는 내지도 않지.

-

"너는 예쁜 얼굴은 아니니까 커서도 어딜 가던지 얼굴로 눙치려 들지 마라. 네가 가진 능력으로 해내야 돼."

좀 더 자라고 나서부터 아빠에게 내내 듣던 말이다.

어느 아빠들은 딸더러 '공주'라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내내 부러웠는지  

커서 아이까지 낳고도 공주소리 한번 들어볼 

심산으로 따지듯이 물었다.

"아빠. 나는 안 예쁘잖아. 아빠도 나한테 예쁘다고 안 해줬잖아. 정말 한 번도"

그때 아빠는 부끄러워하셨다.

언제 그랬냐며 조금 횡설수설하셨는데 그날 이후로 몇 번인가 나를 두고 '예쁜'이라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으셨다.

"나는 너를 정-말 예뻐했어. 자전거에 태우고 여기저기 다니고,.."

나는 아무때나 아빠를 말로 꼬집어대는걸 보면

여전히 고약한 버릇을 고치지 못했으며, 여태껏

받아온 공주대접은 새까맣게 잊었나보다.

길에 핀 무수한 꽃다발과 나에게 준 소박하고

꾸준한 사랑도.

-

*박목월 시 '가정'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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