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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Jun 03. 2021

그런 사랑,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원웨이

나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동생이자, 친구이자, 아들 같은 내 동생

그런 남동생이 몇 해 전 결혼을 했다.

-

결혼을 앞두고 누나 집에 종종 여자 친구를 

데려왔다.

올 때마다 괜히 어색하지는 않을지, 부족함이

보이면 어쩌나 하는 것부터 오면 뭘 대접할지

따위의 고민은 했지만 그래도 누나 집에 선뜻 

데려와주는 동생이 고마웠다.

"얘가 어렸을 때는 어땠는 줄 알아? 하하하..

얘가 똑똑해 보여도 속은 영 헛똑똑일 때가 많아."

-

누이.

누이 앞에 '시'자가 붙는 것이 어색해서 나는 예비

올케 앞에서 장난스레 동생을 놀려댔다.

잘 차려진 고깃상 앞에서 나는 행복했다.

부족한 동생이 아니기에 부족하다 너스레를 떨 수도 있는 여유가 감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

'누나. 나도 이제 한 집의 가장이 될 텐데,

자꾸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누나네 가기 싫어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앉은자리에서 열 번도 넘게 문자를 읽었다.

아까 차린 저녁상이 그대로 머리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기가 막혔다.

자기를 위한답시고 너스레를 떨어대고, 저녁을

해먹인 나를 우스운 꼴을 만들다니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

내가 지를 얼마나 챙겼는데, 내가 어떤 누난데,

내가 어떤 누난데. 정말. 정말.

내가 싼 도시락이 맛있대서 소풍 때는 도시락을

싸주고, 한겨울 수시시험 볼 때는 학교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헤아리기도 벅찬 내가 동생에게 쏟은 모든 양보와 우회적인 사랑.

몇 날이고 구차하게 내가 줬던 것들을 일일이

머릿속에 나열하며 그 문자를 곱씹었다.

몇 번이고 꿈에도 그 문자가 나왔다.

나는 울면서 잠을 깨고

또 그 문자를 보다가 기막혀하고

울적해지다 다시 잠이 들었다.

-

자,

동생을 '아들'로,

누나를 '엄마'로 읽어보면

내 사랑이 얼마나 왜곡됬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의 다른 수식어를 붙이는 건 서로를 힘겹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동생은 그저 동생이어야 하고,

누나는 그저 누나여야 한다.

-

어색하게 몇 달이 흐르고 결혼식이 끝난 뒤,

신혼여행 가는 동생에게 편지와 용돈을 조금

주었다.

'사랑하는 내 동생아,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 뒤의 편지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식장에서는 울지 않았지만, 나는 이 짤막한

편지를 쓰다가 울었다.

-

어쩌면 동생은 누나의 유별난 사랑을 견뎌야 했을지 모른다.

나에게 닥치는 힘겨운 시기마다 동생을 챙기므로

나 자신을 지키고 위안을 얻던, 동생은 달라고 한 적 없는 그런 사랑.

-

우리는 건강하게 이별을 맞았다.

나는 얼룩진 사랑의 모양을 걷어내고,

온전히 누나로서, 단지 누나로서 남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문자도, 이제는 그냥 고마운 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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