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웨이
나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동생이자, 친구이자, 아들 같은 내 동생
그런 남동생이 몇 해 전 결혼을 했다.
-
결혼을 앞두고 누나 집에 종종 여자 친구를
데려왔다.
올 때마다 괜히 어색하지는 않을지, 부족함이
보이면 어쩌나 하는 것부터 오면 뭘 대접할지
따위의 고민은 했지만 그래도 누나 집에 선뜻
데려와주는 동생이 고마웠다.
"얘가 어렸을 때는 어땠는 줄 알아? 하하하..
얘가 똑똑해 보여도 속은 영 헛똑똑일 때가 많아."
-
시누이.
누이 앞에 '시'자가 붙는 것이 어색해서 나는 예비
올케 앞에서 장난스레 동생을 놀려댔다.
잘 차려진 고깃상 앞에서 나는 행복했다.
부족한 동생이 아니기에 부족하다 너스레를 떨 수도 있는 여유가 감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
'누나. 나도 이제 한 집의 가장이 될 텐데,
자꾸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누나네 가기 싫어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앉은자리에서 열 번도 넘게 문자를 읽었다.
아까 차린 저녁상이 그대로 머리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기가 막혔다.
자기를 위한답시고 너스레를 떨어대고, 저녁을
해먹인 나를 우스운 꼴을 만들다니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
내가 지를 얼마나 챙겼는데, 내가 어떤 누난데,
내가 어떤 누난데. 정말. 정말.
내가 싼 도시락이 맛있대서 소풍 때는 도시락을
싸주고, 한겨울 수시시험 볼 때는 학교 앞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헤아리기도 벅찬 내가 동생에게 쏟은 모든 양보와 우회적인 사랑.
몇 날이고 구차하게 내가 줬던 것들을 일일이
머릿속에 나열하며 그 문자를 곱씹었다.
몇 번이고 꿈에도 그 문자가 나왔다.
나는 울면서 잠을 깨고
또 그 문자를 보다가 기막혀하고
울적해지다 다시 잠이 들었다.
-
자,
동생을 '아들'로,
누나를 '엄마'로 읽어보면
내 사랑이 얼마나 왜곡됬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의 다른 수식어를 붙이는 건 서로를 힘겹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동생은 그저 동생이어야 하고,
누나는 그저 누나여야 한다.
-
어색하게 몇 달이 흐르고 결혼식이 끝난 뒤,
신혼여행 가는 동생에게 편지와 용돈을 조금
주었다.
'사랑하는 내 동생아,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 뒤의 편지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식장에서는 울지 않았지만, 나는 이 짤막한
편지를 쓰다가 울었다.
-
어쩌면 동생은 누나의 유별난 사랑을 견뎌야 했을지 모른다.
나에게 닥치는 힘겨운 시기마다 동생을 챙기므로
나 자신을 지키고 위안을 얻던, 동생은 달라고 한 적 없는 그런 사랑.
-
우리는 건강하게 이별을 맞았다.
나는 얼룩진 사랑의 모양을 걷어내고,
온전히 누나로서, 단지 누나로서 남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문자도, 이제는 그냥 고마운 일로 남았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