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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Jun 08. 2021

결혼식 핸드백

아름다운 신부

올해로 결혼한 지가 8년째다.

햇수가 헷갈릴 때마다 첫째 아이 나이로 가늠해보는데 첫째가 7살이니까 결혼 8년 차가 맞다.

벌써 그렇겠나 됐나, 내가 알던 남자가 그렇게나

나이를 먹었나 싶다가도 결혼초에 함께 찍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절실히

느낀다.

남편 역시 사진을 보다 '내가 알던 그 여자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할까 봐 가끔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면 시간과 육아의 노동을 비껴가지 못한 내 얼굴에도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설령 남편이 '많이 늙었네'라고 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변했다.

-

결혼식 전날이었던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남편은

"내일 가방은 뭐 들고 갈 거야?"라고 물었다.

갑자기 웬 가방 타령인가 했더니 신부대기실에서

몰래 친구들이 주는 봉투나 간단한 소지품 같은걸 챙길 가방을 묻는 것이었다.

"가방? 있지!" 하며 내민 나의 가방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소박하고 순진하여 가엽기까지 한 가방이었다.

지하상가 어느 상점에서 만 오천 원을 주고 산

검은색 가죽 숄더백.

남편은 이럴 줄 알았다며 당장 근처 아웃렛이라도 가자고 했지만 나는 고집을 부렸다.

"왜? 이게 창피해? 이걸 들고 가면 창피한 거야?"

물론 나도 아주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지만 남을

의식해서 필요도 없는 값비싼 것을 들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눈치 따위야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값비싼 것들을 깔보는 나의 검소함을 스스로 자랑삼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신부가 이런 걸 들고 가면

사람들이 나를 욕할 거야."

내 알량한 고집도 고집이었지만, 그런 남편의 마음을 뭉개면서까지 내 가방을 들고 갈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 눈초리에 가방을 산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내 속에 중요한 신념을 빼앗긴 것

같아 울면서 가방을 사러 갔다.

사실 대단한 가방도 아니었고, 아주 비싸지도,

아주 저렴하지도 않은 누군가 흉을 보지 않을 만큼의 가방.

어깨끈 중간에 해어진 곳이 없고 가방 박음질 실이 튀어나오지 않은 가방.

작은 가게가 아니라 어느 브랜드에서 카드결제로 산 가방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내 방 서랍 위에 놓았더니 고것이 '어때 역시 비싼 게 좋지? 역시 너도 별 수없지?' 하며 나를 놀려대는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 가방은 보기에 좋았다.

깔끔하고 단정해서 결혼식에 들고 가기에도 적당했고, 역시 물건은 비싼 것이 좋구나. 초라하게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한동안 그 가방은 나를 짓눌러버린 물건같이 여겨져서 사고도 별로 기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내 검소함이 궁상으로 쭈그러드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낡은 가죽 숄더백은 잃으면

안 되는 고결한 순정같이 여겨지기도 해서 한동안 버리지 못했다.

결혼한 지 8년째.

사진 속의 여자가 변한 건 자글자글 잔주름뿐만이 아니라 안목도 역겹게 고급으로 변한 건지 울며불며 샀던 결혼식 가방은 잘 안 들게 된다며 친정엄마에게 휙 줘버린 지 오래다.

물론 내 싸구려 핸드백은 언제 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

며칠 전에 지난 예능 방송을 보다가 한 신부의 가방을 봤다.

신부는 친구가 만들어준 웨딩드레스를 입고 셀프

웨딩 촬영을 가는 내용이었는데, 신부의 등짝에

보기에도 낡은 백팩이 달려있었다.

드레스와 백팩.

예능 속의 친구들도 '이 가방이 뭐냐'며 핀잔을 줬지만 신부는 그냥 속없이 헤헤 웃으며 씩씩하게 낡은 백팩을 메고 갔다.

신부는 아름다웠다.

신부의 생김도 생김이지만 드레스에 백팩을 멘 모습이 흉스럽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게 여겨졌다.

나는 신부의 아름다움을 느낄수록 TV 앞에 혼자

있는데도 누군가 내 역겨워진 안목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숨고 싶어 졌다.

혹시 나에게도 저런 아름다움이 있었을까.

눈을 가늘게 뜨고 봐야   있는 선명하지 않은

아름다움 같은 .

-

나도 그날 내 낡은 핸드백을 가져갔다면 어땠을까.

남편은 울상이었을지라도 나는 사진 속 여자로부터 조금 덜 변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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