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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May 26. 2021

망망대해 같던 공원과 나 그리고 노인

청주

두해 전 여름, 나는 날마다 아이들을 태우고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공원에 갔다.

평일 어정쩡한 시간의 공원은 아무도 없었다.

크고 튼튼한 놀이기구는 온전히 우리들 몫이었지만 아이들과 나만 덩그러니 있으려니 넓은 잔디밭이

망망대해 같았다.

우리는 돗자리에 앉아서 흔들리는 나무를 보기도

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바닥분수를 보며 작은

가게에서 산 음료수를 홀짝거렸다.

이따금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손도 흔들고

멀리서 산책하는 강아지도 구경했다.

나의 작은 승용차 트렁크에는 공원 나들이를 위한 모든 것이 있었다.

작은 돗자리, 휴대용 변기, 갈아입힐 옷,

모래놀이도구, 간단한 간식과 물, 킥보드, 모자와

선크림 같은 것들.

유모차에 그것들을 한가득 싣고 탈탈탈 공원으로

들어갈 때면 나만 어른인 것과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우리 집 앞에 놀만한 곳이 없어 이곳까지 온 게

속상했지만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내 버거운 마음쯤이야 참아내며

달려왔다.

이 곳엔 큰 미끄럼틀이 여러 개 있으니.

-

한 날은 웬 노인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어눌하게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나도 아이들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했다.

그 노인은 나와 두 딸을 서서 오랫동안 찬찬히

훑어보며 웃는 듯 마는 듯했다.

혼자서 불온한 주문을 외듯 뭐라고 중얼중얼

읊조렸는데 알아들을 길이 없었다.

그 노인의 눈길이 닿는 아이들의 다리에 짧은

반바지를 입힌 내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아이들 손을 꽉 잡으며 적막한 공원에 혼자

어른인 것과 우리뿐인 것이 두려웠다.

바람이 불고 이따금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와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분수 소리만 났다.

노인은 무언가 생각난 듯 이내 터덜터덜 걸어갔고 나는 짐을 챙겨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남편이 괜스레 미워져서 눈물이 났다.

'우리만 팽개쳐두고 혼자 회사에 있다니!' 하며 말도 안 되는 원망을 해댔다.

-

몇 달 전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놀이터 없는 그 동네도 공원도 떠나온 것이다.

이전보다 좋은 점이야 많지만은 그중에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놀이터였다.

아파트 중앙에 여러 조형물들이 있고 작은 분수대와

가볍게 앉을 수 있는 벤치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시설들이 제일 좋았다.

아이들은 하원하고 가볍게 놀이터로 향한다.

나는 15분을 운전할 일도 없다.

깨끗하게 포장된 길에 가벼운 가방이 달린 유모차를 끌며 아이들을 따라가면 그뿐이다.

아이들이 내 손을 놓고 놀이터로 달려가면 나는

쫓아가다 말고 망망대해 같던 공원이 생각난다.

생각을 하다 눈물이 왈칵 난다.

-

청주 淸州 맑을 청, 고을 주.

그 도시가 이름과 다르게 우리에게는 얼룩덜룩하게 추억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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