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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May 15. 2021

끼니에 비례한 무게

심는 대로 거둘 수 있는 정직함

며칠 전 첫째 아이의 몸무게가 20kg이 넘었다.

그게 큰 자랑거리라고 믿는지 만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빼놓지 않고 알려주었다.

'나 20킬로야.'

-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젖을 먹었다.

물론 분유를 먹일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엔 모유수유를 했다.

밤낮없이 앉아서, 누워서, 아플 때도, 졸릴 때도.

가끔은 그게 괴로워 울면서 젖을 먹였다.

아기는 아는지 모르는지 입에 한 가득 젖을 물고

흡족하게 먹어댔다. 정말 밤낮없이 안겨서, 누워서, 엄마야 아프던 졸던 울던 상관없이.

조금 자라서 목을 가누게 됐을 땐 이유식을 해 먹였다.

잘하겠다는 욕심이 커서 정성스럽게 손질한 유기농 재료로 하루 세 번 직접 만들어먹였다.

역시나 아기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 길이 없고

무려 한우 안심이 들어간 미음을 거의 뱉어내거나 많이 남겼다.

세 살쯤부터 보육기관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이 먹는 것을 신경 쓰긴 하겠나 싶어 집에 오면 아이가 귀찮아할 만큼 쫓아다니며 입 속에 꼬박꼬박 밥을 밀어 넣었다.

그러던 첫째가 어느덧 일곱 살이다.

20킬로가 된 일곱 살.

오늘은 또 무얼 해 먹이나- 하는 것이 하루하루

나의 작지 않은 고민이지만 그렇게 쌓아온 우리의 끼니들로 보기 좋게 오른 살과 부쩍 자란 키라는

정직한 결과물을 받게 될 때면 그 무게는 아이가

여기는 것만큼이나 나에게도 훈장 같은 것이 되어서 퍽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

살아가면서 마음 같지 못한 것이 많다.

나에게도 그런 것이 참 많지만 그중에 으뜸은

피아노다. 애증의 재즈 피아노.

'속주(速奏)를 못하는 사람도 꼭 연주를 해야 돼?'

내가 가장 무서워하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속주를 잘하려면 물론 연습을 많이 해야 하지만,

어려서부터 잘 단련된 손의 근육과 기본기 같은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

열아홉이 다되어 재즈 피아노를 시작한 나로서는 대학에 가서도 속주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자꾸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가 되고 늘 징그럽게 쫓아다니는 그림자가 되었다.

'나도 꼭 피아노를 쳐야 되나? 손이 느려서 내가

쏟아내고 싶은 16th 프레이즈(phrase)를 쳐내지도 못하는데.'

물론 이건 더, 더 연습하지 못한, 연습하지 않은

나의 변명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해도, 아무리 하고 또 해도 되지 않으며, 밤낮 들인

시간이 빠른 손으로 비례해주지 않는 야속함으로만 돌아왔다.

-

물론 육아도 마음 같지 못한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지만 하루 세 번 끼니를 심는 날들을 반복하다 보면 분명 그에 비례하는 무게로 돌아온다.

7년 만에 20kg짜리로.

바로 이 점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부분이다.

야속하지 않고 정직하게 남겨지는 나의 시간.

어느새 무릎 위에 올라온 첫째의 원피스 자락을

보며 내일은 토요일인데 또 뭘 먹이나- 냉장고를

뒤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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