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다 May 16. 2021

다 괜찮게 여기지는 순간

귀가 먹먹해질 때쯤

"짜증 나."

2년 전 첫째가 5살이 됐을 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말은 그 자체가 주는 전염성이 강력해서

짜증 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늘 우리 사이의 평화를 위해 꾹 눌러왔던 엄마의 짜증도 삐죽. 하고 튀어나오려 했다.

'짜증 나'라는 말을 하는 데에는 나름의 깜찍한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를 들어주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자기 설움에 북받쳐 왕왕 울어버린다.

왕- 왕- 왕- 왕- 와앙

-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가 우는 소리는 듣기 싫은 소리의 재료들로 엄선되어 아주 정밀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뾰족하게 찌르고 간간히 고막을 잡아당기듯이

질질 끄는 소리는 듣고 있으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더 크게 우네, 이를 어쩐다.

-

아이는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른다. 목에는 핏대가 선다. 머리 바닥에도 땀이 맺히고 발은 쾅쾅 굴렀다가 앉아서 발길질을 하다가, 아무튼 다채롭다.

나는 딱히 할 말을 잃어서 '울지 마!' 라던가 '어휴' 라던가 '시끄러워!'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 말을 한다면 꾹 눌러왔던 나의 짜증이 기회를 만나 분출될 뿐, 우리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어렸을 때, 가끔 혼나는 일이 생기면 내 나름의

회피방법이 있었는데 다른 물건을 집중해서 보는 것이었다.

떨군 고개 덕분에 발견한 것 중에 무엇이든.

때로는 타일의 개수가 되기도 하고,

바닥재의 이음새가 맞아떨어지는 규칙적인 모양,

발가락의 높낮이나 신발끈 매듭 같은 것들.

그런 것을 한참 관찰하다 보면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말소리와 상황도 조금은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겨지다 어느새 끝이나 있었다.

-

아이가 운다. 왕왕왕 왕 하고 운다.

그럴 때 나는 아이를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한다.

목젖이 움직이는 모양, 가지런한 이

꽉 감아서 퉁퉁한 눈두덩이, 오르내리는 배 모양 등등..

애가 우는데 뭘 이런 걸 보고만 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는 동안 내 짜증도, 머리를 쭈뼛서게

만드는 울음소리도 멀게 느껴진다.

-

가끔 (물론 아이는 이 시기에 거의 매일 이었지만,)

어른도 별 이유 없이 짜증 날 때가 있다.

이유가 있어도 출처가 모호한 짜증이거나.

그럴 때 나는 나를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을까-

'아, 그래.' 그러다 아이를 확 끌어안았다.

왕왕 울던 울음이 조금 더 커졌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내 짜증에 묻혀버릴 때 나를 꼭 안아줬으면 좋겠다. 안기고 나면, 안아버리면 '다 괜찮다. 이런 것쯤은.'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주혜야.(첫째의 이름이다.) 주혜가 지금 마음이 크느라 그래. 키가 크는 것처럼 마음도 크기가 커지느라 그게 어려워서 우는 거야.'

말은 그 전염성이 강력해서 그 말을 듣던 첫째도

안겨서 고개를 그렇구나. 끄덕끄덕. 끄덕였다.

-

에라 모르겠다. 안아줘 버리자.

세상 가깝고 따듯한 방법으로 난관을 눙쳐버리는 엄마의 육아 경험치다.




이전 11화 끼니에 비례한 무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