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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May 17. 2021

조건 없는 수용

등잔 밑이 어둡다.

'그래그래. 미안. 미안해. 근데-'

나는 근데- 하며 운을 떼는 순간부터 아주 진저리가   쳐졌다.

미안하면 미안한 거지 근데- 라며 나도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이기적인 방어기제를 펼치는 꼴이란..

결혼 전에 만났던 사람과 헤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놈의 '근데' 때문이다.

-

사귐은 서로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수용의 범위와 깊이를 점점 넓혀가는 과정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가끔 그 기준을 높게 세우고 상대방에게 들이밀며 흡족할 만큼 넘어와주기를 요구한다.

말이 좋아 수용이지 한 꺼풀 걷어내고 나면 억지다.

억지.

-

이런 조건 없는 수용에 목을 매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부분은 엄마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다 웃는 것을 보고 엄마가 신기한 듯 쳐다볼 만큼 엄마에게 나는 목석같은 딸이다.

엄마는 칭찬에 인색하셨다.

'잘했어. 근데...'

'울지 마. 엄마가 미안. 근데.....'

지금도 '근데'를 붙이시지만 이제 와서 오래된 엄마의 습관을 내 맘에 좋을 대로 고치려 드는 것 또한 미련스럽게 여겨져서 나는 별로 말도 없고 웃는 것도 신기해 보이는 목석 딸이 되었다.

물론 자라면서 몇 번이고 따지기도 울기도 했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나 또한 엄마에게 다 마음에 드는 딸은 아니겠지.

라며 단념했다.

-

하지만 웬걸. 충족받지 못한 수용의 갈급을 지금도 남편에게 쥐어짜듯 받아내고 있다.

싸우다 조금 불리해질 때면 남편이 대꾸하기 힘든

내 약한 부분을 꺼내어 들이민다.

'그럼 나를 누가 받아 줘!'

-

다행히도 내게 보이는 어떤 결핍이 남편에게는

'함께 있어줘야만 한다'는 대단한 사명감 같은 것을 줬는지도 모른다. 그 덕에 우리가 결혼했을지도.

물론 나는 이 글을 빌어서 엄마에게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행동 자체가 이미

내 괴로움에 대한 우회적 토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

조금 눈을 달리해보자.

-

아기의 귀여움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도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목에 접히는 살이며 쥐똥만 한 콧구멍. 하다못해 방귀소리도 귀여운 게 아기다.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귓전에 얼굴을 파묻고 해댄다. '사랑해요. 우리 아기'

대답도 못하는 아기에게 희미한 미소 같은 것이

대답 이리라 여기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아기가 주는 사랑의 만족감은 그 존재 자체이다.

하지만 아기가 점점 자라면서 아이를 위한다는 선한 명분에 감춰진 엄마의 욕심이 함께 자란다.

이런 행동은 안 했으면, 학습을 좀 더 잘해줬으면,

좀 더 당당했으면, 등등..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첫 마음이 있다.

'너를 독립된 존재 자체로 사랑하기를 원해.'

존재 자체의 수용. 무분별한 수용이 아닌 사랑을

기반으로 한 따듯한 수용.

눈에 거슬리는 습관도, 조금 느린 학습력도,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도 모두 다 그 존재 자체인 것을 잊지 않는 것. 그 첫 마음으로 매일 매 순간 달음질해서 돌아오는 것이 나의 사랑이다.

그렇다면 그 수용에 대한 나의 갈급은 오늘 아이들에게 건강한 사랑을 주는 원동력이 됐는지도 모른다.

-

하루는 아이가 잘못해서 울다가 그쳤을 때쯤

짓궂게 질문한 적이 있다.

'엄마 몇 점짜리 엄마야? 혼내서 미우니까.. 20점?'

아이는 울어서 벌게진 얼굴을 정색하며

'아니? 120점. 아니 백 백점! 백만 점이야!'

-

아. 나는 이미 조건 없는 수용을 받고 있었구나.

늘 찾아다녔건만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어깻죽지 아래의 내 아이가 엄마를 엄마 자체로 받아주고 있었다.

그 마음이 미안할 만큼 고마워서 질문해놓고 덩달아 울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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