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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May 18. 2021

대화의 모든 순간들

말의 힘을 믿는다. 진심으로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면서 20대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을 볼 때면 난 늘 익숙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20대에 아르바이트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그중 하나가 베이커리 아르바이트였다.

온갖 해야 하는 일, 주의해야 하는 일 등등

퇴근할 때면 머리에서 늘 빵 냄새가 났다.

그래도 제일 따끈한 빵이 나오는 시간대를 아는 것이 우중충한 내 기억 속에 유일한 수확이다.

-

그때는 한창 편입 실기시험 준비를 위해 레슨비 충당의 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런 내 상황을 알던 사장은 말했다.

'여기 빵 굽는 기사 자격증이나 따! 월 200은 벌어.

그러다 결혼하면 되겠네. 쓸데없이 무슨 편입이야? 하하하'

이것 말고도 다른 가게 사장은 이런 말도 했었지 참!

'학교 갈 돈으로 그냥 얼굴을 싹 고쳐. 그리고 시집 잘 가면 그게 돈 버는 거야! 하하하'

그때 내 나이가 스물이었다.

갓 사회 속으로 야심 찬 계획을 안고 들어온 스무 살에게 어른들은 못하는 말이 없었다.

-

정 언니.

성씨가 '정'이었던 것과 이모뻘 나이였지만 '언니'라고 불렀으니 정 언니라고 부르겠다.

함께 일했던 정 언니는 잘 웃고 활기찬 분이셨다.

그 언니에게는 중학생 딸이 있었는데 딸과 팔짱을 끼고 퇴근하시던 모습을 종종 봤다.

나는 그 딸이 내심 부러울 만큼 정 언니를 좋아했던 것 같다.

하루는 내 계획에 대해 묻더니 몇 마디 듣지도 않으시고선,

'넌 잘될 거야. 할 수 있을 거 같아!'

잘될 거야라니, 할 수 있을 거야 라니. 이 얼마나 흔해 빠지고 식상하다 못해 마음에 없는 소리처럼 들린단 말인가.

-

 그 베이커리를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레슨을 받고 열심히 연습해서 목표한 대학에 편입하게 됐다.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우습게도,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바로 그 '정 언니'였다.

경험한 지 몇 해 안 되는 사회 속에서 따듯한 말을 던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이었든, 아니었든 나는 그 말을 줄곳 부적처럼 마음판에 붙이고 다녔었나 보다.

이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엄마한테는 네가 최고야. 최 최고.

제일 자랑스럽지. 제일 사랑하고 무엇과도 못 바꾸지.'

살아가다가 힘겨울 때 부적처럼 마음판에 붙일만한 말,

목 끝까지 끌어당겨 덮을 만한 이불 같은 말이 생겨날까 싶어서 아침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우리 사이에 흐르는 대화 속에 아름다운 조각을 심으려 애쓴다.

-

그리고 난 네가 빵집 아르바이트 안 했으면 좋겠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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