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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May 27. 2021

기억되는 이름들

반복적인 꿈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름들이 있다.

갈수록 인명(人名)을 기억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기억되는 이름들이 있다.

그 이름의 주인들은 그저 이름만으로 '기억'될 뿐

어떤 힘도 갖지 못한다.

얼굴도 희미해지고 이름의 주인들과 갖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적당히 가지치기되어 대개는 아름다운

것만 남았다.

그러다 보면 이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어딘가에서 버젓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해도.

-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의 주인은 나의 첫 남자 친구인데 돌아보면 아름다운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미안하고 고마운

것이 많다.

내가 빚진 것이 많다고 느끼는지 어쩌다 한 번씩

그 애가 나오는 꿈을 꾼다.

나에게 뭐라고 따지기를 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잘 지내라며 그 애의 부모님과 악수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날은 자고 일어나며 이제는 영영 꿈에 나오지

않겠구나 싶었다.

잘 지내라고 했으니.

-

다시 말하지만 이름만으로는 힘이 없다.

작년 가을 무렵 버젓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그 애

소식과 심지어  안부를 묻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머리가 쭈뼛섰다.

이름이 '유효'해진 것이다.

내가 그 애 모르게 이렇게 글을 쓰는 것처럼 그 애도 일기장에 내 이름을 썼을지 모른다.

'나쁜 기지배'라고.

-

그 애는 여전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어서 나의

지인과 우연히 공연장에서 만나 내 안부를 물었던 것이다.

"걔는 잘 지내요? 전 잘 지내요. 지금 만나는

사람이랑 결혼할 것 같아요."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가 셋이나 있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기에 '나는 결혼한다.' 한 것인지

알기에 '나도 결혼한다.' 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날 나는 그 애가 있는 서울에 내가 지내지 않는

것을 크게 안도했다.

-

(아마 남편이 알면 서운하겠지만은 그럼에도 글로 남기는 나의 천연덕스러움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어제도 그 애가 꿈에 나왔다.

"나는 너보다 아주 예쁜 사람을 만나서 잘 지내고

있어."

-"그래. 잘됐다. 제발 그래라.'

마음의 빚은 이제 청산이 되었을지.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말을 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만약 하지 않았다면 내가 빚잔치하듯 꿈을 꾸는

이유는 아마 거기에 있겠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서도 할 수만 있다면

죽는 날까지 마주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꿈에도 그만 나와줬으면 싶다.

-

아침에 눈을 떴더니 남편이 맞은편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듯 손이나 머리카락을 만져보다 베개를 고쳐 뉘어주었다.

꿈을 꾸고 나니 정말이지 다 꿈같다.

이름도 소식도 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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