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비용
P는 내가 간다는 말에 전 날부터 장을 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하니 주방에서 부산스럽게 음식을 해댔다.
여러 음식 중에 감자를 채 썰어 야채와 함께 얇게
부쳐낸 감자전이 제일 맛있었다.
그 맛이 생각나 집에서 몇 번인가 해 먹어 봤지만
역시 그 맛이 아니었다.
P는 물건 사는 데는 인색해도 식재료 사는 데는
아끼는 법이 없어 '우리 집은 엥겔지수가 높아!' 라며 깔깔 웃고,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은 돈이 아깝다며 호들갑을 떠는 못 말리는 짠순이다.
같이 있으면 별일 아닌데도 웃고 별일인데도
웃어 버리다 보면 집에 올 때쯤 늘 목이 아팠다.
나는 그 감자전을 좋아하고 그 검소함과 씩씩함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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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J는 우리 집에 와서 아메리카노를 달라기에
따뜻한 것으로 줬더니 아이스는 없냐며 속에서
열이나 늘 덥다고 했다.
'아이 키우면서 무슨 따듯한 아메리카노냐' 라며
손부채질을 해댔는데 그 모습이 웃겨서 우리는
주방에 앉아 깔깔 웃어댔다.
그녀는 손이 야무져서 딸아이 머리를 암팡지게 묶고 손바느질로 원피스를 해 입혔다. 기다란 갈색 캉캉 원피스를.
출산하며 살이 많이 쪘다고 했지만 씩씩하게
아이들을 업고 여기저기 잘 다녔으니 아이들이
행복했을 것이다.
여름이면 오디밭에 가고 물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가을에는 캠핑을 다니며 밖에서 자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먹였다.
지금도 '아이스'를 마실 때마다 엄마 J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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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옷매무새가 단정하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 잘 알아서 늘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꾸민다.
비싼 옷도 잘 입지만 저렴한 옷도 깔끔하게 입을 줄 알며 옷을 '잘' 사지만 그것들을 자랑하듯 뽐낸 적이 없다. 그녀의 조용한 성격과 닮은 모양으로 그 옷들도 그 몸에 차분하게 걸려있다.
잘 정돈된 방을 보는 것처럼 A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었다.
또 그녀는 말주변이 좋다. 그녀가 본 세상얘기를
들을 때면 때로는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며 대화의 기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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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웃는 L이 있다.
그런 그녀가 오랜만에 만났을 때는 밥을 먹다 말고 엉엉 울었다.
L은 잘 웃는 사람이지만 얼마 전 태어난 막내 얘기를 하다 울었다.
아기는 날 때부터 아팠다.
우리는 그날 밥상머리에서 울고 또 만날 때마다
계속 울었지만 헤어질 때는 L답게 웃고 나도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L이 전화로 웃으면서 '너무 힘들다.'라고 했을 때
나는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지만 잘 웃는 그녀가
웃으며 얘기했기 때문에 나는 별 말없이 한숨으로 위로할 뿐이었다.
그녀는 잘 웃는다. 나는 그 웃음을 좋아한다.
그 웃음 아래로 드리워진 그늘을 요령껏 잘
숨기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랑하므로 늘 걷다가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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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 다른 도시로 이사를 했다.
가져온 살림살이며 주변을 정리하다가 문득 내가
두고 온 여자들이 생각났다.
'아차.'
창밖을 보니 오고 가는 차 없이 텅 빈 도로와 겹겹이 산이 보였다.
나는 두고 올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고 거실에서 혼자 울었다.
이곳이 나에게서 가져간 이사비용은 너무 비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