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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May 28. 2021

나만의 그

서른 살, 동휘씨

그가 옷을 입는 데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붉은색 격자무늬 셔츠에는 항상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감색 재킷에는 청바지를 입는 자기만의 작은 약속 같은 것.

특별히 목소리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웃을 때마다 잠깐잠깐 오른쪽에

기다랗게 보조개가 생겼다.

뭔가 생각할 때는 미간을 찌푸리고 주먹을 입에

대는 버릇이 있고, 걸음걸이가 단정해서 신발도

늘 깨끗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좋아했다.

-

우리가 처음 손을 잡던 날, 그는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서 내 앞에 보였다.

나도 손을 살짝 펴서 머뭇거리다 그 위에 얹어보았는데 길고 거칠기도, 부드럽기도 한 손이었다.

그는 천천히 힘 있게 내 손을 잡았다.

-

그는 날마다 운전을 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았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동안 계속해서 노래를 들었다.

Corinne Bailey Rae, Sean Lennon 같은 가수의 노래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Sean Lennon의

'Parachute'

그의 차에서는 늘 같은 방향제 냄새가 났다.

그 한결같은 냄새는 조수석에 앉은 나를 반기며

안도하게 했다.

지금은 그 방향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

차가운 겨울에는 여기저기 걷다가 어묵집엘

들어갔다.

여러 가지 모양의 어묵이 바글바글 끓어대면 제일 맛있어 보이는 어묵을 만족스럽게 먹고 따듯한

정종을 마셨다.

나는 처음으로 따듯한 정종을 마셔봤다.

투박하지만 윤이나는 잔에 딱 한 컵 정도의 정종.

나는 적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 따듯한 한 잔은 겨울마다 생각나지만 우리에게 다시 마실 여유가 사라진 게 아쉽다.

-

집에 바래다줄 때면 늘 내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봐줬다.

그는 내가 번호키를 누를 때쯤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그의 눈길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대낮처럼 모든 게 안전하게 느껴졌다.

-

그에게는 상식적이고 유쾌한 친구들이 많았다.

생일 때마다 축하 연락을 빠트리는 법이 없고

경조사를 핑계 삼아 무례히 술을 마시는 법도

없었다.

모두 사려 깊고 좋은 이들이었다.

-

그는 지금도 한결같다.

몇몇 가지는 그에게 새로이 붙은 호칭에 맞게

조금씩 변했지만 여전히 좋아하던 모습 그대로이다.

그래도 나만의 그였던 날들이 가끔은 그립다.

우리에게 서로를 곱씹을 여유와 마음이 오래도록

있었으면 싶다가도 그러려면 건강을 좀 챙겨야

하지 않나.

음료수 대신 물을 좀 많이 마시고 야식은 좀 줄이고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았으면,... 주절주절...

이런 잔소리를 늘어놓는  보니 남편에게 나도

여전한 사람이고 싶지만.

아, 여편네가 다 됐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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