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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다 Jun 04. 2021

선물 받기의 정석

획(劃)

진주라는 친구에게 가방을 선물한 적이 있다.

홍대의 어느 작은 가게에서 산 알록달록한 백팩.

"어머! 이게 뭐예요?"

뻔히 투명한 비닐에 쌓인 가방 모양을 보고도

귀엽게 이게 뭐냐니.

"가방이야. 생일 축하해.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

그랬더니 당장에 비닐을 벗겨버리고 등짝에 휙 하고 매더니

"어때요? 예뻐요? 잘 어울려요? 고마워요. 언니!

나는 이거 맨날 맨날 매고 다닐 거야!"

정말로 그날 진주의 얼굴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아직도 선물 포장을 풀거나 선물을 할 때마다 진주를 생각한다.

'선물 받기 상'이라는 게 있다면 진주가 1등일 텐데.

-

반면 '선물 받기 상'이라는데 진짜 있다면 나는 아마 꼴등일 것이다.

선물을 받기보다 하는 편이 좋고, 어쩌다 선물을

받을 때면 고마움을 넘어서 이상한 미안함 같은 게

들다가 돌연 '미안하게...' 라던지 '미안해'라고 말해버린다.

선물하는 입장에서는 최악의 수취인이다.

오죽하면 '좀, 너무 좋다. 고마워!'하고 받으면

안 되냐는 말도 들어봤다.

-

이런 식의 선물 받기는 나'때문에' 선물을 사며 돈을 지불한 것에 대한 부담감과 그 부담에 상응하는

뭔가를 나도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뒤섞여있다.

높은 공감능력이 아니며 오히려 남을 배려한다는

핑계로 교묘히 감춘 뾰족한 이기주의이다.

그런 불편한 감정을 피하고 싶어 선물하는 쪽의

편의를 좋아하며 고맙다는 말보다는 미안하다는 말이 쉽다.

'고마워해야 하는 마음 불편한데, 정말 신세 지기

싫은데.'

-

"사람인(人)도 서로 기대어있는 모양이라는데,

좀 기대어 살아."

사람인(人)이 서로 기댄 모양이라면 나는 아마 'ㅣ'이기를 못 견디고 넘어져 자주 'ㅡ'가 된다.

땅바닥에 착 붙은 'ㅡ'가 되어 공연히 망망한 하늘만 바라보다 부는 바람에 춥다, 춥다 하며 드러누운

꼴이 된다.

누구보다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어디 사람이 한결같은가.

진짜로 기대고 싶었다가, 또는 진짜로 의지해버렸다가 '역시 괜한 짓이었구나.' 했던 일이 한두 번이었던가.

하지만, 매일 매 순간 다른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 유기적인 사람의 마음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딱 한 명 전적으로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남편이다.

하지만 남편 역시 유기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므로 늘 나를 완벽하게 채울 수는 없을 노릇이며, 남편은 시부모님의 아들이자, 서방님의 형이고, 딸들의 아버지이다.

나만을 사람인(人) 자로 받칠 사람인 줄 아는 착각 속에 결혼했지만 결국에는 작은 집단을 꾸려나가며 커다란 이해관계를 구축해나가는 게 내가 알게 된 결혼생활이다.

나만을 위한 획(劃)은 아닌 것이다.

-

서로를 받치는 모양의 人이라지만, 나는 혼자서도 탄성이 좋아 떨어져도 다시 튕겨져 넉넉히 일어나고 유연하여 어디에도 잘 기대어지는 획(劃)이 되면 좋겠다.

아쉬울 것 없는 획으로써, 고마움을 그저 고마움으로 느끼고 다가오는 선의와 애정을 그 자체로 받을 수 있어 그것에 잠깐 기대어 쉬는 여유라도 부린다면  이 커다란 세상을 사는 것이 좀 더 편안하고 따듯할지 모른다.

-

"해석하려 들지 마. 결국에는 자존감의 문제라는 거잖아." 라고 남편이 말한다면,

-"그래. 맞아. 획이니 뭐니 빙빙 돌려 말했지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정말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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