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기다리는 것이 있다는 건 중요하다.
중요하고 그것은 행복하다.
기다리는 것, 기다려지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오늘을 오늘답게 살아가게 만든다.
오늘 하루 속 순간순간의 움직임에 의미를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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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다림은 주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무슨 일정이 있나,
아주 특별한 약속이라도 있는 주말이면 몇 주
전부터 그날이 크리스마스처럼 기다려진다.
토요일을 기다리며 금요일을 살게 하는 것,
그런 금요일을 기다리며 목요일을 사는 것.
목요일도, 금요일도 기다리는 것으로 인해
모두 의미 없지 않은 하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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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약속이라는 건 이름만큼이나 특별하기
때문에 자주 있지는 않다.
그럴 때는 나름의 기다릴 것들을 만들며 일주일을 보낸다.
월요일에는 남편의 퇴근이 빠르고,
목요일에는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다.
금요일은 그냥 기분이 좋다.
이번 달에는 좋아하는 부부와 동생 내외를 함께
만난다.
말 그대로 8월의 크리스마스다.
아무튼 한 주, 한 주 이런 식의 기다림을 맺으며
올해의 긴 여름을 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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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다릴 게 없는 것, 기다릴 수 없는 것은
슬픔이다.
나는 그것이 깊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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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에게는 시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오후 6시쯤 잠이 드시고 새벽 4시부터 일어나시던 아주아주 연세가 많으신 그 할아버지는
가끔 한국전쟁에 대해 말씀하시다 눈물지으시고
어울리는 모자를 여러 개 가지고 계신
그런 할아버지셨다.
처음 뵈었을 때도 할아버지는 아흔쯤.
시집 온 이후로 한 해, 두 해 지내며 할아버지께서 여전히 건강하시고 아흔 하나, 아흔둘 되시는 것을 봤다.
'역시 올 해도 건강하시구나.' 안도 비슷한 것을 하며 나의 며느리 나이도 한 살, 두 살 먹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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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조금 지났을 무렵,
추석 명절을 기다리며 남편은 벌초하러 할아버지가 계신 충주에 갔었다.
"애기는 잘 크냐?"
-"네. 할아버지. 2주만 있으면 추석이에요.
그때 둘째도 데리고 올게요."
"추석이 그렇게 오래 남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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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추석 명절을 한 주 앞두고 돌아가셨다.
남편은 아직도 벌초 때 둘째를 데리고 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래도 아흔을 더 넘기신 연세에 손자와 기다려질 만한 약속 하나쯤 품고 계셨던 것에 우리는 그럭저럭 위안을 삼았다.
아무도 몰랐고 나조차도 몰랐지만 나는 그 할아버지가 계신 충주에서의 명절을 매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분이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기다림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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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것 또한 어려워졌다.
할아버지 한 분이 없으니 추석은 이전의 그것이
아니게 됐다.
할아버지의 건강을 눈으로 확인하며
'할아버지는 역시 올해도, 아마 내년에도.'
남편과 눈짓하며 웃을 일도 없다.
며느리 나이를 세어보는 것도 잊었다.
무언가 기다릴 수 없게 돼버린다는 것은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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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다음 달이면 추석이다.
이제 나는 추석을 기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