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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아나무 Aug 22. 2023

사별한 자

말문이 막힌다

  사별한 사람은 말문이 막힌다. 가슴속에서 요동칠 뿐 말이 되지 않는다. 오 년이 지났어도 나는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다.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웅얼거릴 뿐이다. 


  내 남편은 담도암으로 6개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날 새벽, 너무도 힘들게 호흡을 이어가는 남편을 이제 쉬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일 같았다.

  "여보, 사랑해. 이제 여기 걱정 말고... 편히 쉬어도 돼......"

  남편은 이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한줄기 눈물이 그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의 강을 건네는 순간, 우린 찰나에 서로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가 내 곁을 떠났다는 것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황망하다는 말로도 모자란다. 그와 나 사이에 사별이란 상상으로도 해보지 않은 일이다. 납득할 수 없는 실제가 되어버렸다. 

  그때 딸은 대 3, 아들은 대 1이었다. 성인이지만 어른답진 못했고, 나는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병간호를 위해 휴직을 했지만 휴직 사유가 사라져 학교에 복귀해야 했다. 남편 사후 고물상 사업정리를 하는 10개월 동안 나는 거의 미친년이 되다시피 했다. 사람들과 싸우고, 설득하고, 고소와 재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주변에는 온통 사기꾼들이 득실거렸다. 내가 알고 믿어 왔던 사람들 세상이 아니었다. 남편의 일을 끝까지 마무리해야만 그가 편히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거의 귀신 들린 듯이 일을 했다. 하루 잠을 세 시간밖에 못 자도 정신이 또렷했으니까. 그 외 일은 2년에 걸쳐 정리되었다. 

  일을 정리하는 내내 밤마다 목을 놓고 울었다. 몸부림쳐도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편히 쉬라고 말하지 말 걸,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그가 지은 집에서 혼자, 소리쳐 울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눈물이 마르는 50대에게 눈물이 이렇게 많이 들어있었다는 걸. 울어도 울어도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고, 후련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아리고 무거웠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어떤 위로도, 흘러가는 무심한 시간도 내겐 약이 되지 않았다. 

운동도 하고, 기타도 치고, 여행도 다니고, 애들하고 맛있는 것 먹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살아야 할 날들을 즐겁게 살라한다. 시간이 흐르면 차츰 괜찮아진다고 한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무어라 말을 할 수 없다. 함께 꿈꾸던 세상이 무너져 버렸고 나는 홀로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는데, 내가 다시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살아야 할 세상이 닫혀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영영 은둔해 버린 에밀리 디킨슨이 된다. 타인의 이해를 바라본 적은 아예 없다. 고통이라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이 깊은 우물은 사별한 인간에게 새겨지는 검은 영혼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슬프다든지 기쁘다든지 하는 감정적인 표현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더니, 그냥도 살아지는 건 참 이상하다. 중심을 잃은 태풍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바람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있어 내 목숨을 어쩌지 못하니 무심히 낮에는 숟가락을 들고 밤에는 잠을 청한다. 남들은 이제 네가 괜찮구나 한다. 괜찮지 않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말로 이해시킬 수는 없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세상은 사별이 파놓은 긴 강을 건너가 봐야 아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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