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잃은 엄마, 짝을 잃은 여자
아빠를 잃은 딸이 몇 년 뒤 물었다.
엄마, 자식을 잃은 엄마와 남편을 잃은 아내 중 누가 더 힘든 것 같아?
가늠하기 힘든 돌덩이의 무게를 달아보란다.
너는 어떨 것 같아?
나야 둘 다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잘 모르지. 엄마는 아빠를 잃었으니까 어떨까 싶어서.
나도 자식을 잃어보진 않았으니까 감히 어떨 거라고 말할 순 없지. 근데 너희들 중 하나라도 그렇다면,
허...... 억...... 숨이 안 쉬어질 것 같아.
엄마 지인 중에 군대 막 제대한 아들 사고로 잃은 아줌마 있잖아.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거의 문 닫고 사니까 그 아줌마가 생각나서.
벌써 15년이 됐네 그 아줌마. 믿을 수 없는 일을 당하고 그 아줌마 거의 미친 듯이 부처님께 매달려 물었대. 이게 실제냐고, 내가 무얼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냐고. 6개월을 절에서 몸부림치며 울었는데, 어느 날 새벽에 눈앞에서 하얀 새가 산능선으로 날아가더래. 그 엄마 말이 그때 아들을 보내줘야겠구나 싶었대. 얘기 들으면서 같이 많이 울었지. 나도 자식 키우는 엄마니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더라. 덕분에 둘이 소주 8병 먹고 이틀 결근했지만.
그 아줌마 지금은 어떨까?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
안 그래도 내 소식 알고 얼마 전에 연락이 와서 몇 년 만에 둘이 만났지.
어땠어?
예전보다 더 많이 차분해지고 안정감이 있는데, 얼굴에 표정이 별로 없더라. 둘째 곧 결혼한대. 근데 그렇게 들뜨지도 않고 그냥 다행이야라고 하더라. 그 말 알겠더라고. 아들 잃고 나서 그 집 아저씨 많이 아팠잖아. 대장암. 지금은 잘 이겨내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소소하게 여행 같이 다니면서 세월 가는 대로 그냥 산대. 그래서 물었어. 지금은 아들 먼저 보낸 거, 마음 어떠냐고.
딸이 눈을 또렷하게 뜨고 쳐다봤다.
머뭇거렸다. 말의 무게가 묵직해서 잘 뱉어지지 않았다.
돌덩이를 안고 산다고. 속에 검은 돌이 묵직하게 들어앉아 있다고. 그녀의 이 말을 차마 뱉어내지 못하고 나는 말했다.
아줌마 그냥 울더라. 이건 마음먹는다고 마음이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고. 15년이 됐어도 어제 같은 일 같대.
그날 지인이 말했다.
선생님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요. 울어도 또 울게 돼요. 선생님 소식 듣고 그냥 차 한 잔 사 주고 싶었어요.
나도 알았다. 지인의 차 한 잔 그 마음.
누가 더 고통스러운 상황인지 물을 일이 아니다. 위치를 바꾸어 물을 일도 아니다. 오로지 사랑하는 한 존재를 잃어버린 한 사람만이 남아 있다.
자식을 잃은 엄마와 짝을 잃은 여자. 이미 살던 세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한 존재를 상실한 사람들에겐 이 사실만이 검게 남아 있다. 이 우울의 무게를 가슴에 매달고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 나머지 세상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인지, 살아있는 사람이 살기 위한 숙명인지는 잘 모른다. 공자가 말했듯이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이 알며, 사랑하는 한 존재와 사별한 삶은 또 어떻게 이어질지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