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아나무 Feb 18. 2024

봄이 오네요

찰나의 소식들

입춘 지났다고 어김없이 봄이 오네요.

동네 옷가게 옷들이 봄빛으로 바뀌고 있어요.

묵은 때를 벗겨 모아 놓은 것 같은 거리의 쓰레기더미들도 어제보다 더 선명하게 눈에 띄어요.

겨울 빗장이 열리나 봐요.

산책길엔 일찌감치 봄기운을 느낀 들고양이들이 요리조리 몸부림치고요, 오늘 아침엔 우리 집 마당에도 놀러 왔어요.

산수유, 매화나무는 어떻고요.

가지치기하러 나갔다가 깜짝 놀랐지 뭐예요. 하마 꽃망울을 머금어 곧 비집고 나올 기세라 아차, 싶었어요. 조금만 더 일찍 움직여서 가지를 쳐 줄 걸. 꽃망아리 맺혀 벌어지려는 가지들을 어찌한답니까. 벌써 봄마중하러 나온 생명들 앞에서 몇 번이나 가위를 들었다 내렸다 망설이는 모습, 얕고 여린 갈등에 한참을 주저하네요. 겨울나무보다 게으르게 나온 이 사람을 마당에서 들키고 말았어요.



공원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이른 봄기운을 잡으려 하네요. 하늘로 올라가는 나뭇가지 사이를 분주히 옮겨 다니는 조롱박이 새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해요. 

누군가가 나를 불러요. 가까이 가 보니 같이 근무한 동료였어요. 

"어, 어떻게 저인줄 알았어요?"

"아이고, 멀리서 걸음걸이만 딱 봐도 누군지 알겠네."

"하하, 그랬어요? 워낙 위풍당당한 걸음이라. 어쨌건 눈썰미 알아줘야 한다니까."

몸에 밴 습관은 감출 수가 없는 거죠. 사실 난 좀 얌전하게 걷고 싶어 처음에는 조심해서 사브작 걷지만 몇 발작 안 가 조심하는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고, 그냥 몸에 밴 대로 걷다 보니 자주 씩씩하다는 소릴 들어요. 나쁘지 않죠. 활기찬 걸음걸이 얼마나 좋아요. 호호.

주말 부부를 하는 그들 모습이 오늘따라 아주 화사해 보였어요. 덕담을 했어요.

"아유, 두 분 화사한 한 쌍의 잉꼬 같아요. 더 젊어지시고. 서로 막 챙겨주기 하시나 봐요."

"무슨 소리? 내가 맨날 다 해주지. 죽을 지경이네."

"무슨 소리?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나 참."

한바탕 웃는 사이 새들이 화르르 날아올라요. 

나는 서로 다른 시기에 이 두 분과 같이 근무했었어요. 한 분은 내가 황망한 시기에 빠졌을 때 친목회장을 하면서 실없는 소리로 자주 웃게 하셨죠. 전화가 오면 참 독특하게 전화를 받았어요.

"나날이 발전하는 박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늘도 기분 좋고 내일도 기분 좋은 멋진 남자 박입니다." 등.

그래서 그때 동료들이 놀리기도 했어요.

"오늘도 저녁 사고 커피까지 사신다는 박 선생님, 내일은 어디서 모일까요?"

또 한바탕 웃기도 했지요. 

세월이 흘러가니 사람도 시절 따라 흐르는가 봐요. 한 분은 미소가 더 부드럽고 화사해졌어요. 머리도 주황으로 물들였고요. 티격태격하던 이들 부부에게도 훈훈한 변화가 느껴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분들이죠. 이런 분들을 보면, 세월 따라 참 많은 내공을 쌓는 것이 나이 듦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봄이 와서 그런가요?


물 밑 작업을 끝낸 겨울물이 흙과 나무를 타고 올라오고 있어요. 산책길을 걷다 보면 해토머리 흙이 운동화에 묵직하게 달라붙죠. '나, 이제 얼음 풀었어.' 하는 거지요. 정말이지 가둬 두었던 생명들이 새 숨결들을 소리 없이 뿜고 있어요. 나는 그 소리 없는 소리들을 '아, 이거구나' 하며 듣고 싶어 날마다 귀를 기울여요. 분명 미세한 어떤 소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연은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이라는 걸 몸으로, 실체로 말해주는 것 같아요. 우리가 온라인의 세계에 빠져 있을 때도 말이죠. 때를 놓치지 않잖아요. 매화, 산수유가 곧 터질 꽃망울을 무심결에 터뜨리는 찰나찰나마다 올 한 해를 그리는 꿈연주되는 것이겠죠? 


찰나의 변화가, 차가웠던 겨울의 힘이 튼튼한 봄을 피워 올리고 있음을 잔잔히 생각해 보는 날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한모자를 쓰고 걷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