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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아나무 May 22. 2024

그리움을 부르는 나무

감꽃이 피었다


드디어 감꽃이 피었다. 마당에 심은 두 그루에 모두 피었다. 

아, 올해는 풍년이 오려나. 

감꽃을 본 감격에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을 연관시키고 좋아서 흥분했다. 몇 해를 두고도 제대로 열리지 않아 가슴 졸여했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감꽃 피는 봄이 온 것이니 흥분 안 할 수가 없다. 누가 봤으면 틀림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거다.


꽃잎은 4개. 도톰한 질감에 밖으로 살짝 입을 벌린 연노랑 작은 꿀단지. 오므렸던 복주머니를 살짝씩 열어 내게 보여주는 앙증맞은 모습. 수줍은 미소. 꿀벌을 부르는 은은한 꽃술. 

커다란 나뭇잎 속에 감추듯이 피어 있어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얼마든지 찬사를 받을 만하다. 경의, 자애, 소박의 꽃말이 괜히 붙여진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른들의 품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천지도 모르고 뛰어놀던 때, 오월 마당에는 감꽃이 소리 없이 떨어져 내렸다. 어린것들 눈에도 그 앙증맞은 것이 귀여워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실로 꿰어 감꽃목걸이를 만들고, 감꽃팔찌를 만들어서 서로 걸어주고 쳐다보며 웃고 놀았다. 감꽃은 건드리면 잘 갈라져 실에 꿰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누가 누가 더 긴 목걸이를 만들었나 하고 감꽃을 세며 내기를 하기도 했다. 

감꽃 떨어진 꽃자리에는 초록 해바라기모자를 쓴 어린감이 젖망울 마냥 들어차서, 웃는 것도 같고 성난 것도 같았다. 그 그늘 아래서 공기놀이나 딱지치기를 하며 놀다가 감나무 타기를 하기도 했는데, 어른들은 감이 커가는 동안에는 감나무에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가지가 잘 부러져 아이들이 크게 다치기 때문이란 거였는데 그땐 감나무가 노한다고 하면서 겁을 주어 못하게 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우리 집에는 다른 집에 다 있는 감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다. 그래서 외가나 이웃집 감나무에 감이 익어갈 때 나는 호시탐탐 감나무를 노렸다. 물론 넉넉하게 감꽃놀이도 하고 감홍시도 먹을 수 있었지만, 어디 제 집에 있는 것과 같겠는가. 늘 목마른 것이었다. 어른이 되었어도 내가 감나무에 집착하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가 클 것이다. 없는 것에 대한 갈망과 나를 키운 추억의 복합. 그래서 지금 마당에 감나무를 심어 놓고 갈망과 그리움을 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꽃을 보고는 붉은 감이 미리 생각나지 않는다. 복사꽃을 보면 잘 익은 복숭아가 떠오르고, 살구꽃을 보면 노란 살구가 생각나는데,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른 꽃은 놀잇감이 아니었고,  감꽃은 가지고 놀았던 것이어서 그런가.


고등학교 때는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로 시작되는 김준태 시인의 '감꽃'을 외며 다녔다. 또 그때 절친이 쓴 '감꽃'도 가슴 뭉클거리도록 외할머니를 그립게 했다. 우리 집의 감꽃을 보니 친구의 시를 받아 잘 간직하지 못한 것이 더 아쉬워진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김준태, 감꽃

                           



시인의 '감꽃' 속에는 감꽃의 기억에서 전쟁과 산업화의 현실로 이어지는 삶의 여정이 자조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환기시키는 질문을 던지니, 고개를 들어 생각하게 된다.

나는 '지금' 무얼 세고 있는가. 

통장의 잔고? 

아무것도 세고 있지 않은 '나의 모습'이 이 순간 생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마당에 감나무를 심어 놓고도, 나는 동네 골목길을 다니며 담장을 넘어온 남의 집 감나무를 부러워한다. 우리 집 감나무는 언제 크나 싶기도 하고, 담장 위로 주렁 달린 감을 보면 저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외가 마당과 우물 곁에 있던 커다란 감나무는 늘 아스라한 아쉬움이었다. 감은 먹고 싶은데 장대로 따기엔 키가 모자라고, 해서 고개만 들고 쳐다보고 있으면, 외할머니께서 '니 입을 벌리고 있어라'라고 하셨다. 그러고 있으면 '요놈 감이 와 안 떨어지노' 하시면서 웃으시고는 좀 덜 익은 홍시라도 따주셨다. 

남의 집 담장을 엿보는 것이 그리움 때문이라면 주인이 혹시 본다 해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혼자 변명거리도 만들어 본다. 담장 밖에서 골목길의 시간을 누리게 해 준 담장 안의 주인이 은근히 고맙고 친근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우리 집 감나무도 어서 자라서 집 옆을 지나는 누군가에게 아지랑이 같은 그리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붉은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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