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기꺼이 나는 또 너를

by 유한성

그날이 생각난다.

드디어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던 사이사이 빼곡하게 들이붓던 햇빛까지. 비 온 뒤 그 깨끗함과 자박자박 걷던 나. 낯선 언어 사이사이 들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잠시 발걸음 거두어 내 방식대로 순간을 각인시킬 때면 머리 위로 내리 앉던 입맞춤까지. 이런 식이라면 감흥 없던 이곳을 영영 사랑하는 수밖에 없지 않냐며 칭얼거리고 싶었다. 다시 올 거라 했다. 마음은 내내 불안해서 입 밖으로 약속을 꺼내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되어버릴까 봐. 그러기엔 너무 소중해서 다시 돌아올 거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내심 속으로는 불신이 있었다. 어쩌면 알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또 어떠한 현실이 붙들겠지. 더는 나아가지 말라고 그런 식으로 접어버리겠지. 가끔은 불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선택을 해도 지구 종말 따위 오지 않을 거라 아무리 말을 해도 현실보다 압도적이지 않겠지, 이 사랑은.

홀로 많이 울었냐 물었다.

울었다 많이.

근데도 돌아간다면 너를.

근데도 다시 해야 한다면 나는.

기어이 기꺼이 나는 또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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