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씨네 남부권 여행기
며칠 전 카톡으로 오씨네 남부권 여행기 일정이 도착했다. 매년 봄이면 시댁 사 남매는 함께 여행하며 우애를 다진다. 올해는 큰 형님이 아파서 서로 만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충일 연휴로 우리가 시골집에 내려간다고 해서 모임이 성사되었다. 숙소를 예약하지는 못했지만 시골집 주변 관광지를 중심으로 서로 얼굴 보며 밥 한 끼 먹자는 취지였다. 큰 시숙 내외는 고향에 터를 잡았다. 은퇴 후 시골집을 리모델링해서 정원을 가꾸며 산다. 맞은편 원래 시댁의 터는 작은 시숙님이 팔 년 전 신축해서 주말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향에 가면 부모님처럼 반겨주신다. 토요일 오후 11시 30분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반겨주시는 두 내외분과 함께 점심이 예약된 도곡보리밥집으로 향했다.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잠시 기다리니 각종 나물과 돼지수육, 꽃게무침, 다양한 반찬이 함께 나왔다. 큰 시숙, 작은 시숙, 남편, 조카 남자넷은 쌀밥을 주문했고 큰 형님, 작은 형님, 나는 보리밥을 시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첫 번째 여행지는 화순 개미산 전망대, 두대의 차로 나눠 타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려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3층은 카페, 4층은 전망대, 벌써 관람을 하고 가족끼리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로 넓은 카페에 자리가 없다. 일곱 식구가 앉을자리를 마련할 동안 두 형님만 그곳에 남았다. 시숙님들을 모시고 4층 전망대로 이동했다. 옥상에 마련된 전망대는 화순읍을 조망할 수 있다. 반달모양의 조형물과 개미산 전망대란 글씨 앞에 조형물로 만든 토끼 다섯 마리가 놓여 있아 인증숏을 찍을 수 있다. 남자 넷을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활짝 웃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는 무슨 할 말이 많은지 계속 이야기 중이다.
카페에 자리가 생겨 팥빙수와 음료를 시켜놓고 마주 앉아 오랜만의 가족의 시간을 가졌다. 카페는 전창으로 되어 있어 가족단위의 손님이 많았다. 특히 팥빙수가 맛있었다. 달지도 않으면서 인절미와 견과류가 듬뿍 들어있어 가족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큰 형님의 병환이었다. 겨울을 지나며 얼굴에 화끈거림 현상이 생겨 걱정이 많았다. 우울한 모습도 보이고 집 밖을 나올 수 없었다. 큰 시숙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 차도를 보여 밖에 나오기 시작한 지가 삼 사일밖에 되지 않는다. 함께 여행하게 되어 걱정을 덜었다. 그래도 아직은 얼굴을 가리고 실내나 그늘에만 있으면서 조심하고 있다.
두 번째 여행지는 화순 세량저수지이다. CNN이 선정한 가봐야 할 곳 50곳에 선정되었고 화순 8경 중 하나이다. 봄에는 벚꽃과 물안개가 유명해 사진작가들의 사진명소이기도 하다. 계절상 꽃과 물안개는 볼 수 없었지만 약간 흐린 날씨에 산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친 모습이 아름다웠다. 정자를 깃점으로 둘레길을 한 바퀴 돌 수 있고 짧은 길이지만 숲 속을 거니는 느낌이 좋았다. 삼동서가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출발했던 정자에 돌아왔다. 여행지의 필수코스 인증숏 남기기, 제일 막내인 내가 맡았다. 큰 형님은 얼굴 때문에 사진을 거부했고 삼 형제를 세워놓고 찰칵, 다음은 조카 한 명 추가 헤서 넷이서 한 컷, 작은 형님 단독 샷, 작은 형님에 세 식구 한 컷, 큰 시숙님 한 컷, 남편 한 컷, 나도 작은 형님이 한 컷 찍어 주었다.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길 고사리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땅두릅을 캐고 있다. 연세가 있으니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많다. 큰 시숙님이 약간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니 작은 형님이 친정엄마가 우슬뿌리를 달여준 물을 먹고 무릎이 좋아졌다며 한번 드시라고 권유한다. 저녁식사 예약까지 시간이 남아 세 번째 여행지는 남평 은행나묵리이다. 가을에 작은 형님네가 다녀왔는데 너무 아름다웠다고 먼저 앞장을 섰다. 넓은 산 전체를 개간해서 은행나무를 양쪽에 심어 관리하고 있었다. 가을 축제 때는 오천 원의 입장료를 받았다는데 지금은 카페를 지어 1인 1 메뉴를 고르고 입장료를 대신하고 있다. 우린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신 터라 입장은 하지 않고 짧은 은행나무길만 돌고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저녁 식 싸 때는 고모네도 일 끝나고 합류하기로 했다. 사 남매가 다 모인다. 도곡에 있는 행복한 임금님 밥상에 도착하니 5시 40분 잠시 밖에서 기다리니 고모, 고모부가 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입장하니 각 테이블에 3인씩 앉으라고 권유한다. 잠시 후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이 나온다. 나무로 된 판 위에 주방에서 세팅을 해서 바로 상위로 밀어서 올려준다. 남도답게 떡갈비, 돼지갈비가 메인요리이고 각 돌솥밥, 상추, 풋고우, 잡채, 샐러드 가지튀김, 파스타, 쌈장, 된장국이 올라온다. 식혜는 병에 담아 각 테이블마다 준다. 가족끼리 하는 식사라 마음도 편하고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가족의 우애를 다진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고모네는 광주로 향했다. 우린 시골집으로 들어왔다. 둘째 형님네서 짐을 풀고 삼동서가 나란히 소화도 시킬 겸 시골길을 걷기로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시간이다. 큰 형님네 키우는 하얀 복덩이를 데리고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 좁은 길이던 농로는 시멘트로 포장되어 차가 다닐 수 있게 되었고 냇가에 흐르는 물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작은 물고기들은 파닥이며 작은 몸을 반짝이며 수면 위로 점프한다. 한 시간가량 어둑한 시골길을 걸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동안 시야는 깜깜해졌다.
시골의 새벽은 빨리 동이 튼다. 다섯 시 십 분 정도 되니 큰 형님과 시숙님이 새벽예배 가는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밖으로 나와 혼자서 운주사 가는 둘레길을 돌았다. 아침 9시부터 일정시작이다. 아침은 간단히 감자 넣고 조개찌개를 끓였다. 큰 형님네 텃밭에서 상추를 뜯어다 샐러드 식으로 간단히 무쳤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이른 아침을 먹고 네 번째 여행지 강진 남미륵사로 향했다. 어릴 적 엄마 따라 다슬기 잡으로 걸어갔던 길은 이차선 도로가 뚫려 차가 씽씽 달린다. 산이 깊어 호랑이가 나온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온통 산이던 곳인데 사십 분 정도 달리니 강진 남미륵사에 도착했다. 1980년 법흥스님이 창건한 절로 세계불교 미륵대군 총본산이라고 쓰여있다. 높이 36미터 둘레 32미터의 동야최대규모의 황동 아미타불 불상이 있는 법당으로 유명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입구에 코끼리 상이 눈에 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철쭉과 서부해당화가 심겨 있어 봄에는 더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철쭉 관광지라고 한다.
마으 안쪽에 절이 있어 옛날 토담길을 보며 아버지가 만든 돌담을 생각나게 했다. 경내 곳곳에는 법흥스님의 시구가 프린터 되어 눈길을 끈다. 큰 시숙님과 나란히 걸으며 시구절을 읽으며 감상했다. '틀린 말이 하나 없네요'라며 좋아하신다. 돌판에 새겨진 시구절도 많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이다. 절을 창건하며 힘들었던 마음, 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글로 써 놓았다. 마지막으로 본 청동불상은 어머어마한 크기로 주변에 검은색 원통모양으로 둘러싸여 있어 소원을 빌며 그 종을 돌리며 한 바퀴 돈다고 했다. 한국 전통적인 사찰의 느낌보다는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며 큰 형님은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은 했지만 큰 시숙님과 단둘이 여행은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숙님, 이제 바쁜 일 끝나면 형님이랑 두 분이서 함께 여행도 다니세요'라고 말했더니 '그럴까요' 하며 웃으신다. 다섯 번째 여행지는 영랑생가, 세계모란공원이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니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차가 멈춘다. 작은 소도시답게 한적한 느낌이다. 건물도 낮고 담장도 낮다. 여유가 넘친다. 걸어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시구가 쓰여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색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길을 따라 새겨진 시구저를 따라가니 정갈한 초가집이 나온다. 오른쪽 건물에는 현대식으로 건물이 지어져 '시문학 기념관'이 있다. 초가집을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오래된 백일홍이 굵은 나무를 따라 지붕 위로 휘어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잘 살았던 집 같다. 툇마루도 멋있다. 끝에 올라가서 샘물을 보면서 저절로 시구가 지어졌을 만큼 시원한 높은 마루가 있다. 그곳에서 잠시 내려다본다. 장독대옆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살아있는 나무지만 초록색 이끼가 끼어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쉬려고 앉아 있는 남편의 사진을 찍어 주다 보니 장독대 옆에는 '오메 단풍 들겠네' 란 시가 돌판에 새겨져 있다.
집 뒤편을 따라 세계모란공원으로 이동했다. 큰 형님은 잠시 툇마루에 쉬기로 했다. 나머지 가족들은 계단을 따라 대나무 숲을 지나니 바로 모란공원이 나온다. 모란은 지고 실내식물원에 조성된 세계 여러 나라의 모란을 구경하고 피어있는 수국 앞에서 가족사진도 남겼다. 점심식사는 강진에 있는 무지개식당의 병어조림과 갈치조림으로 예약이 되어 있다. 십 분 정도 차로 이동해서 농협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서자 작은 식당이지만 손님으로 가득 차 있다. 갈치조림 4인 병어조림 4인분이 끓일 준비를 마치고 하얀 테이블 위에 밑반찬이 놓여있다.
빨간 조림은 언제나 맛있다. 감자와 무가 적절히 들어있어 바글바글 끓고 있는 모습마저 맛있다. 고모네 딸이 근처에 살고 있는 전화 하니 36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함께 나왔다. 식사를 하고 다음 여행지를 이야기하니 차를 대접하겠다고 나선다. 가출이란 카페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출발했다. 다섯 번째 여행지 가우도 출렁다리다. 도착하니 가출 (가우도 출렁다리에서 시간을 노래하다) 입구는 아이들의 작은 수영장에 물이 찰랑거린다. 2층으로 도니 카페에는 잠시 티타임을 함께 하며 조카네 가족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부부가 경찰공무원으로 저녁출근이라서 먼저 보내고 우리는 가우도 출렁다리로 걸어갔다.
가우도 출렁다리 입구는 작은 상점들이 있고 심장병 어린이 돕기 콘서트가 한창이다. 지역가수 김영수가 나는 반딧불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작은 형님은 고소공포증이 있다며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출렁임이 심하지는 않았다. 데크로 촘촘히 만들어져 있어 걷기도 편했다. 오른쪽 둘레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중간쯤 가니 작은 출렁다리가 있다. 길이는 짧지만 가운데는 바다가 보이게 투명하게 되어 있다.
양쪽에는 나무로 되어 있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옆으로 갈 수 있는 배려가 돋보였다. 남해의 바다답게 잔잔하고 물빛은 약간 탁했지만 여유로워 보인다. 유월의 날씨는 흐리다지만 낮의 날씨는 덥다. 큰 시숙님은 70대 중반으로 중간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우리끼리만 중간까지 가다 다시 돌아왔다.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바다조망에서 잠시 쉬며 인증숏을 남기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들어갈 때는 썰물이었는데 나올 때는 밀물이어서 물이 찰랑이니 더 아름다웠다. 하늘 위로는 집라인을 즐기는 관광객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섯 번째 여행지는 마량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점심 먹은 게 소화가 되지 않았지만 큰 형님이 회를 드시고 싶어 해서 수산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이순신장군이 수군을 다시 일으킨 항로인 조선수군재건도가 그려져 있다. 노랫소리를 따라가 보니 일반사람들이 신청해서 노래자랑을 한창하고 있다. 마량놀토시장으로 먹거리 타운과 함께 바다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참 노래 잘하는 사람 많다. 더워서 그늘에 앉아 잠시 감상타임을 가졌다. 바닷바람도 시원하고 열창하는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큰 형님도 노래를 잘하는데 아프지 않았다면 한 자락 했을 것 같다.
주변상인들에게 맛있는 횟집을 물어보니 수산경매시장을 추천한다. 큰 형님의 주도로 흥정이 시작되었다. 타깃은 여름보양식 민어. '형님 저녁은 저희가 살게요. 여행 간다고 하니 큰애가 용돈을 보내줬어요'라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신다. 6킬로그램짜리 민어를 공략했다. 주인과 한참 실랑이를 하더니 이십만 원에 성공했다. 조금 더 있으면 비싸진다고 하니 잘 산 것 같다. 다른 가족은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고 형님과 나만 남아 민어회를 가져가기로 했다. 수산시장의 풍경은 횟감을 고르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바구니마다 살아있는 낙지가 꿈틀거리고 싱싱한 갑오징어가 파르르 날개를 떨며 물을 뿜어댄다. 갓 잡아요 활어가 주는 신선함이 넘쳐난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주인장의 민어해체쇼가 시작되었다. 그 작은 여자의 손으로 민어의 대가리를 단번에 자른다. 지레는 먼저 꺼내서 물에 씻어 따로 소중히 포장을 해준다. 껍질을 벗겨내고 민어의 척추를 따라 살만 발라내자 뼈만 남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방금까지 파닥이던 녀석이 소리 없이 누워있다. '민어지리탕은 여름 나는 보양식이라네' 큰 형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칼질은 세월의 경력을 말해준다. 도마에 놓고 부위별로 포를 떠서 하얀색 접시 위에 세 접시 담아준다. 그래도 한쪽 면이 남았다. 큰 형님은 다 먹지 못할 것 같으니 부위별로 포장을 부탁했다.
민어회를 들고 식당으로 들어서니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마인지 모르지만 일단 몸에 좋다 하니 모두 한 점씩 드시며 맛있어한다. 민어는 일반횟감과 다르게 도톰한 식감이 있고 뱃살부위는 약간 꼬들꼬들한 느낌이 있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회가 어느 정도 끝나니 민어지리탕이 도착했다. 뽀얀 국물이 사골 곰국 같다. 시숙님께 먼저 떠 드리니 후루룩 소리를 내며 드신다. 맛있다고 하니 뿌듯하다. 온 식구가 여름날 보양식 한 그릇 했다며 행복해한다. '형님, 함께 여행하니 너무 좋아요. 아프셔서 내색은 못했지만 너무 걱정했어요' 라며 둘째 형님이 취기를 빌려 마음의 소리를 전한다.
큰 형님도 겨울을 지나며 밖에 나오지 못할 만큼 아팠고 걱정하는 자식들에게도 당신 모습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새벽기도를 다니시고 약을 드시며 노력한 덕분에 다시 건강한 우리의 형님으로 돌아와서 너무 기쁘다. 무엇보다 큰 시숙님의 걱정이 많으셨다. 돌아가실까 봐 묘 자리까지 생각했다는 말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졌다. 우린 멀리 떨어져 있어 전화로 안부를 물었지만 한 동네에서 자주 보는 작은 형님의 걱정이 느껴졌다.
가족의 정, 결혼으로 인해 가족이 되었다. 큰 형님은 늘 말씀하신다. '동서, 우리는 핏줄로 맺은 형제가 아니니 늘 조심해야 되네' 그만큼 동서지간에 서로를 존중했다. 무엇이든 큰 동서로 당신이 앞장서서 바람막이가 되어주려고 했고 동생들 다 같이 잘되기를 바랐던 분이다. 결혼해서 시동생 뒷바라지 자식들 뒷바라지가 끝나고 시골에서 보내는 노후가 너무 행복하다 하셨는데, 맏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늘 안고 살았던 형님이다.
그런 두 형님내외의 희생과 정성이 가족 간의 끈끈한 정으로 이어졌다. 형님들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집안의 가장인 큰 시숙님은 늘 동생들을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계획과 실행을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안내하는 작은 시숙님, 늘 밝게 맞아 주시는 작은 형님, 그런 정성이 쌓여 늘 우애 좋은 오씨네 사 남매가 되었다. 살아오면서 힘든 일도 있었겠지만 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가족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내년에도 우리 함께 건강하게 여행해요' 인사로 마루리하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