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무렵

멸치국수 &비빔국수

by 맑은샘

하지를 지나며 해가 길어진다. 산책할 시간도 늘어난다. 어두웠던 길은 아직도 밝아있고 주변의 풍경도 세세하게 느낄 수 있다. 사람의 일생으로 보면 청소년기에 해당한다. 질풍노도의 시기처럼 날씨는 오락가락 장마기간인 경우가 많다. 한낮의 날씨는 덥고 저녁이면 시원해진다. 지면이 아직 뜨거워지지 않아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서늘한 느낌이 든다. 갱년기 여성의 증상처럼 더웠다 추웠다 비가 내렸다 쨍한 해가 뜨기도 한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는 여름을 향해가고 있다.


이맘때 양파, 마늘을 수확한다. 싱싱하던 줄기는 고꾸라지고 누렇게 변해가면 수확할 시기가 된 것이다. 밭고랑사이에 나란히 누워있는 양파, 마늘을 보면서 농부의 뿌듯함을 대리만족한다. 텃밭에 심었던 강낭콩, 푸른 오형제 완두콩도 이 시기에 수확한다. 장마기간이라 싹이 나지 않도록 날씨조절을 잘해야 할 시기이다. 빈 땅에 심을 수 있는 것은 들깨모종이다. 어린 모종을 심어도 되고 들깨씨앗을 얕게 뿌려주면 따뜻한 지면 때문인지 일주일이면 싹이 나서 자란다. 봄에는 상추가 밥상을 차지했다면 더운 여름에는 들깻잎이 제격이다.


비가 오는 날 고구마 줄기를 적당히 잘라 심어 놓는다. 뿌리도 없는 줄기를 심어도 물기만 있으면 잘 자란다. 두 마디 정도 잘라서 심어도 일주일정도면 자리를 잡고 잘 자란다. '땅은 놀리면 손해다'라고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이 시기에는 오이냉국을 먹기 시작한다. 더운 날 땀 흘리고 나면 시원한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뜨거운 국을 끓이기에 덥다는 느낌이 들면 오이 한 개 양파 반 개, 곱게 채를 썰어 다진 마늘, 식초, 설탕 넣고 매운 고추 송송 썰어 넣어 자작하게 물 붓고 냉동실에 차갑게 식혀서 먹는다.


하지 무렵은 장마기간에 해당된다. 비가 내리고 꿉꿉한 날에는 잔치국수가 제격이다. 차가운 물에 멸치 몇 말 넣고 한 참을 끓인다. 이때 양파껍질을 넣고 끓여주면 더 시원한 맛이 난다. 육수가 끓으면 잠시 두고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인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국수 한 줌 넣고 젓가락으로 휘저어주고 끓어오를 때 찬 물을 한 그릇 넣어주고 면을 손으로 눌러본다. 말랑하게 으깨지면 잘 익은 것이다. 채반을 놓고 찬물에 여러 번 헹궈준다. 넓은 그릇에 국수를 곱게 말아 담고 그 위에 계란지단, 호박복은 것을 고명으로 올리고 끓인 육수를 뜨겁게 부으면 된다. 기호에 맞게 양념간장을 만들어 먹으면 더 맛있는 느낌이 있다.


만약 국물 있는 국수가 싫다면 비빔국수를 만든다. 먼저 고명으로 올라갈 야채를 손질해 놓는다. 풋고추 두 개, 양파반 개, 오이 한 개, 재료는 곱게 채를 썬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끓어오르면 국수를 삶는다. 탱글한 면발은 비빔국수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신경 써서 삶는다. 국수가 삶아지면 빨리 찬물에 헹궈서 건져놓는다. 양념을 만든다. 고추장 두 스푼, 식초와 설탕은 동량, 참기름 약간 고춧가루 조금 넣고 비닐장갑을 끼고 양념을 버무린다. 국수를 넣고 윤기 나게 무쳐주면 비빔국수가 완성된다. 초록색오이와 당근, 양파의 식감이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며칠 흐린 하늘만 보다 햇빛이 쨍 한 날이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떠 다니는 모습에 시선이 밖으로 향한다. 저 구름을, 저 하늘을 보러 가야겠다. 산책하다 바라본 아파트 담장에 엉킨 담쟁이넝쿨은 짙은 초록색으로 줄기를 뻗어 운치를 자아낸다. 어린시절 줄기를 따서 눈에 가로로 세워 포물선이 되도록 깨우면 놀이했던 기어기 떠올랐다. 지금 그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흙벽을 타고 자랐던 넝쿨은 아파트 담벼락을 타고 여전히 그 모습으로 추억하게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무인편의점에서 복수앙맛 얼음과자를 이천 원에 샀다. 입에 달달한 맛에 시원하기까지 하다.


산길로 접어드니 햇살은 나무사이로 숨어 보이지 않고 적당한 습기와 촉촉함이 산행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더 선명하다. 가지를 타고 오른 칡넝쿨은 나무를 칭칭 감고 하늘 높이 오르고 있다. 보라색 꽃이 진 자리에는 아직도 칡향이 남아있다. 아키 시아 꽃이 진 자리, 나무에는 까치 두 마리의 사랑놀이터가 되었다. 굴참나무는 길게 골을 지며 나뭇잎은 무성해졌고 열매를 기를 준비를 한다. 철 지난 뽕나무 밑에는 떨어진 오디로 인해 보랏빛으로 물들고 먹이를 찾는 산비둘기의 맛있는 놀이터가 되었다.


이맘때 아카시아는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 두고였다. 짙게 자라 아카시아를 따서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잎사귀를 하나씩 떼어내며 놀았다. 잎사귀를 먼저 떼어낸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남은 줄기는 머리카락에 곱게 말아두면 머리가 뽀글뽀글해지는 게 너무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도 태양은 하늘가에 있다. 하늘은 변화무쌍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하늘도, 먹구름이 몰려오는 하늘도, 비가 내린 후 잠시 갠 하늘도 모두 멋진 하늘이다.


하지 무렵의 산책은 길게 할 수 있어서 좋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하늘도 좋고 바람도 좋다. 길어진 해 덕분에 즐거운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여전히 하늘은 맑고 푸르다. 땀에 절은 모습으로 걸어온 길을 생각하며 내일 도 나설 산책길을 상상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프니까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