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
5도 2촌 생활,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중년에 접어들며 두 아이는 독립해서 나가고 부부만 남아 단조로운 생활을 하던 차에 아이들 장가가서 손주 생기면 시골이란 정서를 느끼게 해 주자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시골이란 의미가 없어지던 차에 잘됐다 싶어 시간 날 때마다 서산에 있는 부동산에 연락해 물건들을 보러 다녔다. '땅은 다 임자가 있는 법' 그 말처럼 정말 우리가 원하던 조건에 부합하는 집을 만났다. 파란 지붕에 마당은 넓고 화목보일러가 있던 곳, 집 뒤편으로 산자락을 품은, 그 후부터 주말이면 시골아낙네의 삶을 살아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을 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좋았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감자를 시심이며 감자가 싹을 틔우고 상추심어 한 잎 두 잎 따서 먹을 때 행복했다. 어릴 적 보았던 것이 기억이 났고 먹었던 음식도 생각이 났다. 그러나 우리 바람과는 다르게 결혼한 아들내외는 아직 아이가 없고 자기 일 바빠 겨우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여행하듯 다녀가는 것뿐, 결국 두 부부만 금요일 퇴근 후 시골집에 갔다가 일요일 오후면 다시 도시로 올라온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겨울은 물론이고 봄이 되어서도 점퍼를 입고 산다. 마당에서 서성거릴 뿐 집 밖은 거의 나오지 않는 편이다. 반면 찬바람이 쌩쌩 불어도, 눈보라가 쳐도 아침산책은 한 바퀴 돌아야 하는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주말 봄비가 흩날리며 바람까지 세차게 분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새벽,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아침 먹고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잔디밭에 잡초를 뽑는다. 환갑이 지나고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리에 강제로 운동을 시키는 중이다. '오늘도 걸어야지 두릅이나 따러갈까?' 나는 자연인이다 애청자인 남편은 '봄이면 두릅의 향이 기가 막히다'라고 윤택이 말했다며 따라나선다. 사실 남편은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은 바라보라고 있는 것이고 마당에서도 잔디도 보고 나무도 보는 데 굳이 왜 들판을 다니냐는 주의다.
비가 개인 산자락을 본 적이 있는가? 뒷산으로 오르는 길 부쩍 자란 마늘밭에서 바라본 도비산의 풍경이 기가 막히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운무가 걷히면서 올라가며 산자락을 감싼다. 신선이 노닐다 갈 것 같은 그런 풍경이다. 소나무 군락 사이로 활엽수가 군데군데 삭을 틔워 진녹색, 연둣빛, 녹두빛, 사이사이 하얀 벚꽃, 진분홍복숭아꽃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멋지다, 산에 오길 잘했네.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잖아'.
산길로 접어드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우겨져 있다. 김해김 씨 문중산의 비석이 세워진 무덤가에 우뚝 선 두 그루의 동백나무가 빨간 꽃을 피우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장선 남편을 따라 무심코 바라본 나무 밑에 아기손처럼 생긴 고사리가 쏙 올라와 있다.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가져간 에코백에 톡, 톡, 톡 하고 꺾어 넣는다. '벌써 나왔네' 조금 빨리 나온 것 같은데... 혼잣말을 하며 여기저기 올라온 고사리를 꺾는 손길이 바쁜다. 작년 이맘때 친정가족 모임 때 온 가족이 등산 겸해서 꺾었던 순간이 생각이 나서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비가 내린 산길은 인적이 없다. 우거진 수풀 속에 비에 젖은 바위는 검은색으로 물기를 머금고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니 산중턱 임도가 나온다. 양쪽으로 즐비한 소나무 덕분에 세찬 바람도 불지 않고 고요하다. 조금 더 가면 두릅나무가 있는 곳이 나온다. 숲길은 고요하고 작은 새들의 소리만 적막을 깨며 청량한 소리를 낸다. '여긴 바람도 안부네' 남편의 말에 '거봐 오길 잘했지?' 길 옆에 핀 분홍색 복숭아나무 앞에 남편을 불러 세워 인증사진을 남겼다.
한참 걷다 보니 두릅나무가 보인다. 우거진 수풀 속에 가시가 돋친 나무에 새순을 올려 꼭대기에 봉긋한 새싹이 두쪽이 올라와 있다. 가지를 잡고 내려 손으로 당기면 툭 하고 떨어진다. 여기저기 몇 잎 나오지 않아 더 소중하다. 가방에 넣고 잠시 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환하게 밝아오는 동네 여기저기 마을도 보이고 모월저수기, 인지 너른 들판이 바둑판처럼 펼쳐있다. 우리 집도 찾아보니 작은 성냥갑만큼 작아 보인다. 아직은 조금 빠른지 몇 개 따지는 못했지만 목적달성은 했다.
내려오는 길 머위 잎도 따고 달래도 몇 뿌리 캤다. 마당에 심은 상추도 따고 싱싱하게 무 오른 향긋한 당귀 잎도 따서 깨끗이 씻었다. 끓는 물에 굵은소금 넣고 두릅이랑 머위는 데쳤다. 상추, 당귀 잎은 깨끗이 씻어 바구니에 나란히 놓고 데친 두릅이랑 머위 함께 놓으니 쌈 바구니 완성이다. 캐온 달래는 고추장아찌 꺼내 송송 썰어 상추와 함께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조금 넣고 살살 무쳤다. 쌈장대신 먹으면 짜지 않은 맛이다. 마당에 앉아 지글지글 불판 위에 얇은 소고기 구워 상추 위에 놓고 무친 달래장아찌 올리고 한 입 먹으니 봄의 향긋함과 싱그러운 맛이다.
비가 내린 후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운무를 본 적이 있는가? 봄에만 느낄 수 있는 비 오는 나의 수채화처럼 비가 그치면 바람을 타고 하늘로 피어오르며 순식간에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 봄의 산수화를 볼 수 있다. 비가 내린 후 잠깐 볼 수 있는 풍경이어서 우리네 인생처럼... 긴 세월이라 생각했는데 젊음에서 중년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소중한 것을 볼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지만, 삼십 오 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여전히 그와 함께 하고 있다. 매일매일 다름을 인정하고, 때론 감정에 지치고 , 왜 저럴까?를 수백 번 되뇌며 보냈을 시간이다. 그럼에도 지금이 소중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