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서
하얀 대문이 보이고 컴콤한 집에 불을 켜면 일주일 간 삭막했던 집에 온기가 흐른다.
오늘은 서산 세컨하우스에서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다. 일 년에 한번 시골집에 오는 큰 아들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있다. 옷을 갈아 입고 서둘러 저녁밥상을 준비한다. 한우구이, 표고버섯볶음, 애호박 된장찌개를 준비해 한 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큰아들은 결혼해서 분가해서 살다보니 자주 볼일이 없다. 며느리는 퇴근이 늦어 참석하지 못했고 키우던 강아지가 따라와 재롱을 부린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강아지가 산책하고 싶은지 낑낑거린다. 문 앞에서 앉아서 기다리기까지 그 모습이 귀여워 목줄을 맸다. 일어난 큰 아들도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산책길에 나선다. 셋ㅇ이서 시골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살아가는 일상을 나눈다. 결혼 후 본가에 혼자서 온것은 처음이다. 나름 원가족이 모이는 것도 괜찮은 마음이다. 아침을 차려 먹고 서산동부시장 구경도 할 겸 온 가족이 출동했다.
동부시장 초입 국수를 뽑아 작은 대나무에 걸어 정겹게 걸어놓은 국수집이 눈에 띤다. 아들은 신기한 듯 사진을 찍는다. 엄마 어렸을 적 밀농사를 지으면 추수해서 외할머니가 국수 뽑아오셨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니 처음보는 풍경이라고 이야기 하며 시장 들른 후 국수 사가자고 했다.
시장 골목 골목, 농기구를 파는 가게가 많고 옷가게는 주로 일복이나 작업복을 많이 팔고 있다. 서산이니만큼 생선과 회를 파는 가게들이 많고 골목마다 할머니들이 앉아서 주변에서 뜯어온 나물을 팔거나 말린생선을 파는 가게도 있다. 호떡집도 있고 떡볶이 순대도 판다.
골목 끝 정육점에 닭튀김이라고 쓰여있고 네 개의 솥뚜껑이 걸려있다. 작은애가 말한다. '엄마 이거 도화동에 살때 정육점에서 이렇게 팔았잖아' '그래 난 기억이 없는데' 한마리 튀겨가기로 했다. 즉석에서 주문을 받아 양념을 하더니 통닭을 넣고 가마솥뚜껑에 튀기신다. '20분정도 걸려요' 시장 한 바퀴를 돌고 오기로 했다.
그 사이 횟집에 가서 광어 한 마리를 회를 뜨고 머리도 싸가지고 왔다. 이것 저것 조개도 푸짐하게 넣어주신다. 닭튀김을 찾아서 시장 초입 국수가게에 들러 국수도 한다발 샀다. 집에 돌아와 마당에 있는 야외용 테이블에 상을 차렸다. 닭튀김과 광어회 그리고 각종 야채 그리고 매운탕까지 아까 사온 국수는 매운탕에 살짝 넣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 닭을 먹으며 화제는 도화동 닭집이야기이다. 사십대 중반 남편의 명예퇴직과 함께 건물에 어린이집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살던 아파트는 전세주고 큰아들은 군대가고 17평짜리 오래된 5층짜리 아파트의 꼭대기로 이사를 가며 작은 아들은 많은 상실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이니 감수성이 예민할 때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이니 월세로 이사를 가며 엘리베이터도 없고 키가 큰 작은 아들이 눕기에는 거실의 길이가 짧아 사선으로 누워야했다. 어린잊비 개원 후 아이들 한 명 한 명 모집하고 적응시키느라 야근도 자주하고 집에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시기였다.
작은 애는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아했고 부모는 그래도 대학은 가야한다로 많이 날선대화를 했었다. 퇴근후 야간자율학습 하고 돌아오는 작은 아들을 도화역에서 기다렸다가 수봉공원 폭포밑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애도 울고 나도 울고 부모지만 아들의 마음까지는 들어갈 수 없으니 참 답답했던 시기였다.
현재도 작은 아들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으나 잘 되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고 있다. 한 가족이 되어 삼십년 가까이 살면서 서로의 마음을 잘 나누지 않게 되는 것이 가족인데 그래도 이렇게 모여 앉아 성인이 된 아이들과 함께 할 수있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 뿌듯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