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샘 Jul 30. 2024

나의사랑 나의 엄마

엄마의 밥상

  붉은색 월남치마를  입고 고불고부  짧은 파마를 하고 가랫몰에서 제일 멋쟁이였던 아의 엄마, 솜씨도 좋아 동네잔치가 열리면 제일 먼저 불려가던 나의 엄마의 댁호는 방매댁이었다. 이른 새벽 제일 먼저 윗샘에서 물 떠나 장독대에 정안수 떠놓고 자식 잘되라고 두 손모아 싹싹 빌던 정성으로 아궁이에 매캐한 연기 마셔가며 여섯 자식 입에 넣을 밥을 하느라 부엌에서 들리는 달그락 달그락 그릇소리, 따그닥, 따닥따닥 도마소리를 자장가 삼아 좀 더 자고 싶던 유년시절, 엄마는 솜씨가 좋았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오면 동네앞 방죽에 바라난 미나리를 베어다가 오일장에서 사서 두엄에 삭혀둔 홍어를 무쳐주셨다. 홍어는 내장과 분리하여 엇비슷하게 썰어 막걸리에 담구어 두었다가 물기 꼭 짜서 빙초산 두어 방울, 설탕, 고추장, 고추가루 넣고 조물조물 밑간을 해놓고 미나리는 끓는물에  살짝 데쳐 물기꼭짜서 먹기 좋게 썰어 고추장, 고추가루, 막걸리식초, 설탕 넣고 무쳐서 한꺼번에 섞어서 갖은 양념 넣고 무치면 새콤달콤 홍어의 삭힌맛과 어우러져 매콤한 홍어무침이 된다. 밥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행복이 가득하다.


  여름 엄마의 밥상으  채소가 많았다. 전구지는 엄마의 단골반찬이다. 텃밭 한켠에 전구지밭이 있어서 일 끝나고 나면 늘 광주리에 베어서 왔다. 외간장, 깨소금넣고 밥상에 오르면 비벼먹어도 맛있고 학독에 마늘, 고추, 몊이젓갈 넣고 갈아서 담근 엄마의 전구지 맛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맛이 있었다. 전구지는 바로 담궈 먹어도 맛있고 며칠 지나 익어도 맛있어서 우리 배를 두둑하게 만들었다. 농사일로 땀흘리고 난 후 점심은 가마솥에 국수 삶고 윗샘에서 길어온 차가운 물에 설탕 넣고 찬물에 헹군 국수를 넣으면 달달한 설탕국구의 맛과 면발의 쫄깃함이 느껴지는 맛이다. 땀흘린 후 먹는 달달한 국수는 갈증 해소에 그만이었다.


  먹거리가 훙성하  가을 뿌려놓은 배추와 무가 조금 자라면 솎아내야했다. 포기가 차고 무가 실하게 크기위한 자리비움이었다. 솎아낸 무와 배추는 다듬어 살짝 소금에 절여놓고 김치에 들어간 속 재료를 준비한다. 빨갛게 익은 고추, 마늘까고 찬밥한덩이, 멸치젓갈 넣고 학독에 쓱쓱 갈아서 준비한다. 절여놓은 배추와 무를 소쿠리에 건져서 다라이에 갈아놓은 양념 넣고 재료가 들어가면 손맛 좋은 엄마 손으로 버물버물 주위에서 동생들과 이제나 저제나 목빼고 기다린다. '간봐라' 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딸은 손으로 김치를 집어 한 입 먹어보면 아삭한 식감에 비릿한 멸치젓갈냄새와 고소한 참깨맛이 어우러져 멈출수 없게 만든다. 먹성 좋은 딸들 덕분에 김치는 금세 바닥이 나고 엄마는 또 솎아온 김치를 담궈야만 했지만 지금도 그 맛이 입안을 맴도는 느낌은 잊을 수 없는 엄마의 손맛이다.


  겨울은 바쁜 농사철이 끝나고 아버지는 사랑방에 새끼줄 꼬아서 덕석을 만들고 엄마는 바느질하며 하루를 보낸다. 동지섣달 찬바람 휭하니 불면 군불 때서 방바닥 따뜻하게 해 놓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민화투를 쳤다. 10원짜리 내기지만 동그랗게 모여앉아 치는 화투는 너무 재밌고 살짝 패를 바꾸기도 하며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찬 겨울 저녁 간식은 찐 구구마가 제격이지, 거기에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엄마가 만든 동치미 한 사발이면 행복한 마음에 절로 웃음이 난다. 십이월 동지가 되면 찹쌀 한 말 씻어 불려놓고 팥도 꺼내 돌을 골라 깨끗하게 씻어 조리질로 돌멩이 골라내고 걸너낸 후 가마솥에 한 소큼 삶아 놓는다. 불린 쌀은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면 따뜻한 물에 소금 한 준 넣고 휘휘 저어 익반죽을 해 놓고 딸내미들 동그랗게 모여 앉아 새알심을 빚는다. 그 사이 삶은 판을 소쿠리에 올려놓고 문질러 으깨서 물로 체에 내리면 검붉은 판물이 만들어지고  가마솥에 펄펄 끓인다. 동그란 새알심 넣고 동동 떠오르면 판쿨 밑에 가라앉은 앙금 넣고 한 번 더 끓여준다. 동지섣달 추위는 뜨끈한 팥죽 한 그릇이면 추위도 저만큼 물러나 있다.


  이렇듯 솜씨 좋고 이  잘하던 엄마가 고장이 났다. 고된농사일로 쓰러짐을 반복하던 엄마는 한쪽 다리를 살짝 끌고 다니셨고 자식들 객지 나가 홀로 남은 시간속에서 점차 기억을 잃어갔다. 홀로 남겨진 부모를 모실만한 자식은 없었다. 사는게 바빠 요양원에 모셔놓고 자식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삶의 희미한 기억마저 놓아가던 엄마, 그런 엄마의 삶은 내가 사십이 되던 해 하늘나라로 떠나며 영영 이별을 했다. '엄마 이제 그만 하늘나라 아버지 곁으로 가세요' '긴 병에 효자 없다고'고 용양원에서 야위어 가는 엄마를 보며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그런 내가 엄마가 아팠던 시기의 나이가 되었고 잘하지 못했던 자식으로서의 삶이 참으로 후회가 된다. 조금 더 건강하게 계셨으면 좋았으련만 고생만하다 하늘의 별이 되신 솜씨좋고 멋쟁이로 동네에서 제일 멋졌던 나의 사랑 나의 엄마 오늘 따라 당신이 참 그립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