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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Aug 16. 2024

곰솥과 떡시루

시어머니의 마음


  결혼할 무렵 친정엄마는 많이 아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의지하던 마음이 무너져서 점점 기력을 잃어갔다. 1989년 3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 가 돌아가신고 일 년 후 였다. 아픈 엄마를 대신 해 결혼준비는 혼자서 주로 하고 작은엄마가 많이 도와주셨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시댁에 인사드리고 인천으로 돌아올 때 시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스텐으로 된 곰솥과 2단으로 된 양은 시루를 주셨다. 이거 쓸 일이 있을 거라면서 친정엄마가 준비를 못해주니 당신이 사두셨다며 건네주셨다. “엄마는 걱정하지 말아라 시아버지랑 챙겨줄 테니 너희들만 잘 살면 된다” 시어머니의 그 말은 참으로 든든하고 의지가 되었다. 고추 말려 판돈을 모아두셨다가 트럭에서 장사가 올 때 준비해 주셨단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잘 쓸께요. 어머니” 말씀드리고 곰솥과 떡시루는 나의 살림이 되었다.     

  시골에서는 구하기 힘든 27종 스텐으로 된 곰솥은 무거웠지만 빛이 반짝 반짝 빛이 났다. 평소에 쓰지 않던 곰솥은 집들이 할 때, 손님이 많아 갈비찜을 할 때, 아기 낳고 미역국을 끓일 때, 옥수수차를 끓일 때, 사골을 골 때 쓰였다. 떡시루는 정말 쓸 일이 없지만 어머님이 주신 거라 간간히 쓰였다. 첫 아기 돌 때부터 열 살 까지 아기 생일 때 시루떡을 해 주면 좋다는 말에 해마다 아이들 생일 때 2단 시루는 꼭 필요했다.     

  물에 하루 정도 불린 쌀가루를 방앗간에 가서 곱게 빻아오고 시골에서 어머님이 주신 팥을 삶아 시루에 밑판을 깔고 팥 한켠 깔고 그 위에 하얀 쌀가루 넣고 또 팥 한칸 깔고 가루 뿌리고 맨 위에 판을 뿌려주어 가스 불 위에 얹어 김이 모락모락 날 때까지 푹 쪄주면 맛있는 팥시루떡이 되었다. 아이들도 자라서 곰솥과 시루는 창고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었다. 주방에 쓸 조리도구를 사다가 문득 어머님이 주신 곰솥과 시루가 생각이 났다. 곰솥은 아이들 국을 끓일 때 좋았다. 넉넉히 재료를 넣고 미역을 넣으면 미역국이 뚝딱, 된장을 넣으면 된장국이 되고 아이들이 매일 맛있는 점심을 먹을 국솥이 되었다.     

  시루는 아이들 간식을 만들 때 요긴하게 쓰였다. 고구마를 찌거나, 감자를 찌거나 만두를 찔 때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어머님은 그 먼 훗날까지 생각해서 주신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머님이 주신 곰솥과 시루는 결혼해서 30년이상을 나의 주방에서 함께 하고 있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어머님은 돌아가셔서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주방에 있는 곰솥과 시루로 인해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특히 결혼기념일이 있는 3월이면 더 생각이 나는 어머님의 따스한 마음 덕분에 지금까지도 “너희들만 잘 살면된다”는 말씀을 지키려 노력하며 우리의 결혼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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