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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Aug 16. 2024

소소한 행복

소박한 밥상


  햇살이 눈이부시게 밝은 삼월의 어느 봄날, 아침 햇살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창밖으로 들리는 작은 새들의 소리와 창밖으로 보이는 시골풍경이 정겨운 아침이다. 여유롭게 아침밥을 준비한다.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넣고 쌀뜨물은 조금 받아서 냄비에 넣고 청국장 한 덩이를 풀어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넣을 재료를 찾다가 하얗게 곱이 낀 동치미 무를 꺼냈다.  종종 썰어 물에 담궈 두었다가 청국장이 끓기 시작할 무렵 냄비에 넣어주고 냉동실에 어려 두었던 빨간 고추 두 개를 넣고 팔팔팔 끓여주고 간을 보니 그럴싸한 맛이 난다. 엄마도 우리 어렸을 적 초봄에는  동치미무와 누렇게 익은 잎사귀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 주셨다.


  남편과 함께 갓 꺼낸 김장김치와 청국장 그리고 새로 지은 밥을 놓고 마주 앉아 아침밥을 먹는다. 마당에 날아오는 새소리가 정겹다.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한잔을 마신 후 운동화를 신고 동네 뒤편에 있는 도비산으로 향한다. 피빅, 비비빕, 삐빕,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함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우거진 신우대사이에서 새들은 종종종 서로의 이야기로 바쁘다. 낯선이의 발자국소리에 멍멍 동네 개들의 짖어대는 소리와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한적한 아침풍경이다.     

  앙상한 나뭇가지 끝마다 맺힌 영롱한 이슬마저도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언 땅을 비집고 수줍게 고개 내민 이름 모를 풀들과 흰털을 보송이며 쑥이 고개를 쑥 내밀고 있다. 산자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편안한 숨을 쉬어본다.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가는 새들의 여유로운 날개짓과  따르륵, 뜨드드득, 열심히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소리마저도 휴식이고 쉼이다. 산 중턱은 햇살이 가득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때쯤 눈에 들어온 시야는 참으로 멋진 풍경이다. 산 아래로 펼쳐진 시내와 벌판은 온통 하얀 운무에 가득 쌓여 신비롭게 느껴진다.     

  삼월 신학기 적응기간을 지내며 새롭게 적응하는 아이들의 힘듦과 적응시키려 애쓰는 교사들의 수고가 모아져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지내왔던 일상들이다. 가쁜 숨을 헐떡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고 교실에 적응하도록 돕다보니 “숨 돌릴 틈이 없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래서 휴일은 최대한 느릿느릿 천천히 걷는다. 내 가슴이 편안한 숨을 쉬도록, 한적한 산길 임도를 걸으며 그저 소나무군락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고요한 숲 속을 보며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작은 물소리가 들린다. 얼었던 겨울을 뒤로하고 녹아내린 물줄기는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햇살은 앞에서 나를 눈이부시게 비춰주고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오른쪽을 따라 쪼륵, 쪼륵, 졸졸졸 흘러내린다. 작게 흐르는 물소리는 나에게 최고의 평안이고 위로다. 아직 움이 트지 않은 많은 나무들이 따스한 햇살을 받아 봄을 준비하며 천천히 호흡하고 있다. 길가에 큰 바위에 누군가 무심히 올려 놓은 돌은  작은 염원을 담은 바램이겠지, 산 구비를 돌아 정상을 향해간다. 깊은 숨을 흠, 하고 들이마시고 휴, 하고 뱉어본다.     

  중턱쯤 만들어 놓은 쉼터의 등나무는 온힘을 다해 기둥을 껴안고 비비꼬아 또아리를 틀고 올라가 있다.  길가의 오동나무, 소나무, 참나무, 자귀나무는 제각기 자신만의 힘으로 영토를 자리 잡고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려 온 힘으로 햇살을 받고 있다. 휴, 천천히 걷고 있지만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 산 정상에 헹글라이더를 탈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이 나온다. 커다란 왕릉처럼 된 언덕에 오르면 서산시내와 인지면 농토와 멀리 바다까지 360도 회전하며 전체풍경을 볼 수 있다. 나무를 베어내고 거적을 덮어 놓아 큰 왕릉처럼 높이 솟아 있어 햇살을 받고 누우면 하늘과 바람과 풍경이 삼박자를 이룬다.     

  햇살과 바람과 하늘과 산 위에서 내려다 본 아침풍경은 그야말로 힘듦을 잊게 하는 것들이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며 올라갈 때 놓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며 편하게 내려왔다. 집 근처 밭둑, 덤불사이에 쑥들이 제법 자라서 하나하나 캐서 주머니에 담았다. 옆에 있던 달래도 몇 개 뽑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와 쑥은 비벼서 깨끗이 씻어 된장국을 끓이고 달래는 깨끗이 다듬어 도마에 놓고 송송 쓸어 간장, 참기름, 깨, 넣고 달래장을 만들어 봄이 있는 점심밥상에 오를 예정이다. 이렇듯 소소하지만 숨을 쉴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기에 바쁜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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