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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Aug 16. 2024

동사를 걸으며

쉼이 있는길



  이른 아침 제일 먼저 하늘을 본다. 동쪽하늘부터 서서히 하늘 문이 열리고 잿빛이던 하늘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형형색색으로 물든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카메라를 들고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커피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여 머그컵에 담아 마당으로 나와 다시 한 번 하늘을 쳐다본다. 뜨거운 물 한 모금이 밤 새 차가웠던 몸을 식도를 타고 온 몸으로 돌아 나를 따스하게 감싼다. 운동화를 신고 스트라바 앱을 켠다. 오늘은 서해랑길 64-2코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본다. 빨간 불덩이 하나가 서서히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먼 산 배경과 어우러져 용 형상을 한다. 마치 빨간 여의주를 입에 문 것처럼 쉼 없이 꿈틀거리며 올라온다. 노랗게 익은 벼들과 어우러져 연신 감탄사를 만발하게 한다.


   논과 논 사이에 농로를 따라 걷는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따라 걸으면 가슴이 탁 트인다.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본 적이 있는가? 노랗게 익은 황금들판을 따라 걷다보면 모월저수지가 나온다. “높은 산지가 없는 서산지역의 지형상 하천이 발달할 수 없어 가뭄이 오래되면 냇물이 말라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벼농사에 활용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이다. 옆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낚시가 가능해 낚시하는 사람이 많다. 모월저수지를 지나 쭉 뻗은 신작로를 따라 걸으니 드넓은 바다로 가는 길이 나온다. 바다가 많은 지형을 이용해 간척을 하여 농토가 넓어지고 농토 옆은 갯벌을 낀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마음 급한 철새들은 벌써 날아왔는지 떼를 지어 갯벌 위를 날다, 다시 논까지 날아온다.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일렬종대로 날아가다 어느 새 횡대로 날아가고 종횡무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철새들이 부럽다.


  동사 3km, 이정표를 따라 동사까지 가봐야겠다. 산동사거리 지나 조금 걷다보니 산저사거리에 동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동네를 지나니 “끼야호” “끼약”하는 큰 울음소리가 난다.  근처의 사슴농장이 눈에 띈다. 사슴울음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사슴농장은 주변 향나무를 예술적으로 가꾸어 놓으셨다. 향나무를 사슴뿔모양으로 다듬기도 하고 다양한 모양으로 다듬어 놓아 정성이 담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지금부터 오르막길이다. 10분정도 오르니 산 입구에 해돋이 1,5킬로 해넘이 1.5 킬로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해돋이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동사 가는 길은 임도로 포장이 되어있다. 조용한 산 속을 걷다보니 졸졸 흐르는 냇물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산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작은 물길을 따라 물이 흐르고 있다.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는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하는 소리이다. 왼쪽은 조금 전 지나왔던 모월저수지와 서산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오른쪽은 적송과 길쭉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사색하며 걷기 좋은 공간이다.


   노란 들국화가 반겨주고 하얗게 핀 취나물 꽃도 아름답다. 해돋이광장에 오르니 갯벌이 한눈에 보이고 서해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떠오르는 태양도  잘 보이는 공간, 그래서 해돋이광장이구나! 이른 아침이지만 해 뜨는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연신 카메라 셔텨를 태양을 향해 터트린다. 동사 0.7km 해돋이 광장을 내려와 동사 가는 길로 들어선다.  임도가 넓게 트여있어 자동차로도 갈 수 있고 걸어서 갈 수 있다. 아침이라 인적은 드물다. 동사 가는 이정표 발견, 오른쪽 산을 끼고 동사 가는 길로 걸어가니 오랜 세월 누군가 소원을 빌었을 연등들이 줄지어 매달려있다. 빨강. 노랑, 분홍, 초록, 주황 저마다의 염원을 담아 걸어놓았을 연등을 따라 한 참을 걸으니 오래된 벚나무와 팽나무가 동사를 동그랗게 감싸 안고 있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세월의 흔적을 담은 동사,  파란기와지붕은 낡아서 색이 바랬다. 빨갛게 칠한 문도 빛이 바래 세월을 견딘 흔적이 남아있다. 동사 앞뜰에는 작은 나무의자가 있어 방문객의 발걸음을 잠시 쉬게 한다. 작은 텃밭에는 다양한 야채를 가꿔놓은 삶의 흔적이 있다. 상추 몇 포기, 파, 배추, 부추, 시금치 등 공양에 올릴 소소한 음식을 만들 식재료를 심어놓았다. 이른 아침이라 법당은 볼 수 없었지만 동사에서 내려다 본 바다에 간월암이 보이고 서해바다의 갯벌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날아가는 철새들의 쉼 없는 움직임도 장관이다. 봄이면 동사를 둘러싼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이 장관이라니 봄이 되면 다시 한 번 와 봐야겠다. 동사가는 길 목적을 향해 걷는 걸음이 아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걸어서 좋았던 길 험한 길도 아니고 높은 것도 아니고 그저 묵묵히  걷다보니 그 자리에 위치한 낡은 동사가 편안한 햇살과 함께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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